림삼 고백시 ** 나 죽기 전 어느 날엔가... **

  • 등록 2024.06.18 09: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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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졌던 기억 솟아나니 문득 콧등 시큰해집니다

 

바람 살랑이는 오늘도 난

조봇한 오솔길 따라

차박 차박 소리지르며

한 걸음씩 가고 있습니다

길 옆 쫄로리 늘어선 

노랑 민들레 식구들

한 송이 두 송이

다른 이름 붙여주면서

혹여 아내가 들을지도 몰라,

그래서 벌컥 뛰어나와 

반겨 맞을지도 몰라,

호기롭게 목소리 높이다가

정녕 아무 대답 없으려나

귀를 기울여봅니다

기적을 그리면서는

가슴이 콩닥 뛰기도 합니다

아내는 아주 아주 오래 전

이 길의 끝자락 쯤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날도 노랑 민들레

흐드러졌던 기억 솟아나니

문득 콧등 시큰해집니다

아내의 나라에는

아마도 노랑 민들레가

여기보다 천만 배는 많이

피어있을 겁니다

분명 온 누리 노란 빛으로 물든

그런 세상일 겁니다

이사하던 날

 

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는

아내의 초점 잃은 얼굴에

잠시라도 웃음 깃든 건

노랑 민들레 우우우 일어서

아내에게 노란 손 흔드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기 때문일 겁니다

내아내가

치매에 걸려든지는 하마

열다섯 해가 넘었습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그저 그냥 누워만 있구요

 

소리 없이 깊어진 그 병은

세월인 양 나이 먹더니

아내의 말문을 닫아걸고

귀를 막아버리며

아예 눈까지 잠가

세상에서 단절시키고는

그도 모자란지

음식 씹는 힘조차 앗아간 채로

적선하듯 어느새

숨 쉬는 법만 남겨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꿈을 꾸고 있다 합니다

잊을만 하면 잠결에 이따금

그 고운 미소를 선 보인다지요

제발,

아내가 꾸는 꿈에는

아내도 주인공으로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허기사 어차피 누구나

자신의 짐을

십자가 마냥 짊어지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삶이란 게 그렇지요,

삶의 파도는 언제나

자기 키 보다

높게 온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파도는

이끄는 게 아니고

그 위에 타야 하는 거,

세월이 할 일 없이

우리 이마에

주름을 얹지는 않을 겁니다

 

허면 내 주름이 깊어져

골 따라 세월 녹아들다가

어떤 날 하루

아내의 세상 한 귀퉁이

잠깐이라도

나 들어가볼 수도 있을까요?

 

노랑 민들레 담뿍 피어난

오솔길을 따라

아내 고운 손 잡고

서로 눈길 마주치며

빨간 노을 아래로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걸어볼 날 있을까요?

 

혹여

나 죽기 전 어느 날엔가...

 

관리자 기자 news33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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