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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림삼의 초대시 '추억의 비'

더 늦기 전에 눈꼽만큼 남은 감성과 낭만이나마 송두리째 반죽해서 마지막 가을 추억을 빚어야겠다.
회한이 없도록...


      림삼 작가


- 시작노트 -

목하 만추지절이다. 가뜩이나 짧은 가을이 이따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더욱 수명 단축의 비명을 지른다. 지금은 하루 하루 쌀쌀한 바람이 세상을 도배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바야흐로 다음 주쯤이면 겨울이라는 소리 나올 법도 하다. 이름하여 환절기의 극점에 서서 오늘을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아! 가을의 끝자락이라, 더 늦기 전에 눈꼽만큼 남은 감성과 낭만이나마 송두리째 반죽해서 마지막 가을 추억을 빚어야겠다. 회한이 없도록...


영화 ‘만추(晩秋)’ ‘이만희 감독


- 시작노트 -

목하 만추지절이다. 가뜩이나 짧은 가을이 이따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더욱 수명 단축의 비명을 지른다. 지금은 하루 하루 쌀쌀한 바람이 세상을 도배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바야흐로 다음 주쯤이면 겨울이라는 소리 나올 법도 하다. 이름하여 환절기의 극점에 서서 오늘을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아! 가을의 끝자락이라, 더 늦기 전에 눈꼽만큼 남은 감성과 낭만이나마 송두리째 반죽해서 마지막 가을 추억을 빚어야겠다. 회한이 없도록...

문득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영화 ‘만추(晩秋)’가 떠오른다. ‘이만희 감독’의 23번 째 연출작으로 ‘호현찬 프로덕션’이 1966년에 제작했던 이 영화는 한 여죄수와 떠돌이 위조지폐범 간의 3일간의 덧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특별히 ‘김지헌’의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영화대본으로서가 아니라 ‘문학성을 지닌 문학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은 연출자인 이만희다.

그는 ‘7인의 여포로’(1965)로 옥고를 치루는 과정에서 휴가차 나왔다가 작가 김지헌을 만나 “여자가 죄를 짓고 형무소에 갔다가 나오면 제일 먼저 어디를 갈까? 형무소에서 오래 있던 여자가 세상에 나오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을까?”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화두를 쫓아 김지헌은 3개월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이만희가 전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겨냥해서 영화촬영에 들어갔다. 촬영 장소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창경원’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를 세트로 세워 20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서정민’의 카메라는 흑백의 절묘한 톤으로 두 사람의 심리와 성격의 미묘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라스트신에서 동물원 우리에 갇힌 낙타의 목마른 표정, 벤치 아래 우수수 지는 낙엽 등 고도로 짜인 영상은 객석을 무거운 침묵으로 몰아넣었다고 평가받는다. ‘문정숙’의 노래 “겨울이 가고 따뜻한 해가 웃으며 떠오르면…” 주제가와 바바리코트 깃을 올리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수에 찬 주인공의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수려하고 짜임새 있는 영상미학 속에 담겨진 남녀의 애틋한 사랑은 개봉 당시 관객들을 감동시켰고, 이만희 자신도 “작가의 리얼리즘의 성숙은 ‘흑맥’으로 시작되어 ‘시장’을 거쳐 ‘만추’에 이르러 확고한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의 획을 긋는다.”고 자평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제5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감독상·남녀연기상·시나리오상’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추억의 명화 중 대표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신성일’과 ‘문정숙’이 출연한 이 영화는 당시 ‘명보극장’에서만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1975년 ‘김기영’ 감독, ‘김지미’ 주연으로 ‘육체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1982년에 ‘김수용(金洙容)’ 감독, ‘김혜자(金惠子)’ 주연으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신인감독인 ‘사이토 고이치’가 ‘약속’이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일본영화 베스트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에 속하면서 영원한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2011년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ㆍ현빈’을 주연으로 하여 다시 한 번 리메이크 제작함으로써, 기존 영화를 미처 접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변함없는 위용을 뽐내기도 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언제 어디서든 기회가 된다면, 원작이거나 아류작에 구애받지 말고 꼭 한 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영화라도 한 편 감상하면서 늦은 가을을 만끽하다보면 어느새 피부를 통해 다가서는 또 다른 계절의 맛을 느끼기 시작할 거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환절기’라고 부른다. 물론 환절기는 계절과 계절 사이에 끼어, 다음 계절이 열리는 입구 정도의 역할을 하는 시기인지라 한 해에 네 번이나 존재한다. 그래도 다른 환절기는 별로 실감이 안나고, 유난스레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시작되는 이즈막이라야 비로소 환절기라고 이름 하기에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이번에는 이 환절기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책을 한 권 보자. 제목 자체가 바로 ‘환절기’라는 2006년에 발간된 소설이다. ‘차라리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차라리 거리의 풀 한 포기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평택의 중학생 ‘정수경’ 양의 이야기를 접하고 쓴 성장소설이다. 죽음보다 더 혹독한 시련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진실을, 아픈 성장 이야기를 통해 그려냈다. ‘제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정애’의 작품이다.

위안부였던 할머니,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다 심하게 고문을 당한 아버지, 집을 나간 어머니... 수경이에게는 꿈을 꾸는 것도 사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던 수경이는 포항에 살고 있는 고향 사람 목순네의 도움을 받아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러다, 수경이는 목순의 아들 병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수경이는 할머니의 친구였던 봉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할머니는 수경이에게 ‘살다 살다 정 못 살겠으면’ 봉선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일러줬던 것. 할머니는 수경이에게 담담하지만 치열하게 삶에 맞서 싸우는 법을 말해준다. 봉선 할머니를 통해 느껴지는, 바람에 휘어지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강인함을 통해 희망이라는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봄빛같은 것이 아니라, 끝내 해내고 말겠다는 단단한 의지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지만 끝내 희망만은 놓지 않은 강인한 여자 아이의 성장 이야기가 시종일관 묵직한 감동을 전해준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면 메떡같이 푸석한데 그가 하면 찰떡같이 쫀득해지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박정애야 말로 딱 그런 사람이다. 힘겨운 삶의 고비를 넘어가는 위안부 할머니와 고아 소녀의 모습에서 흔한 신파나 동정은 없다. 당당하게 삶에 맞서는 그들의 투지는 수라상같이 풍성하고 잔칫집같이 흥겹다. 거친 멥쌀 같은 현실이 박정애라는 무거운 떡메로 수천 번 치대이고 두드려졌으니, 소설의 그 맛은 찰떡같이 쫀득하고 입에 감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수경은 분명히 소녀다. 그런데 소녀라는 말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기 마련인 어떤 호사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단절된 여주인공이다. 삶의 벌거벗은 진실과 일찍이 부딪쳐 어두운 터널 안을 더듬거리며 헤쳐가듯 최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통상적 성장소설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풍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자기 안의 어둠인 양 포옹하고, 상처받은 여성의 영혼과 육체를 집합적 부활의 터전으로 섬세하게 재구축하는 작가의 속정 깊은 붓끝은 차라리 축복이다.

유년을 상실한 이 땅의 모든 소녀들의 참된 소녀성에 헌정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욱 성장소설의 본령에 다가가는 역설을 보여준다 하겠다. 어느덧 육십대 중반으로 다가서는 필자가 지금도 꾸곤 하는 악몽의 목록이 있다. 차라리 죽는 것 보다도 힘들어서, 다시는 잠 들지 말아야겠다는 헛된 다짐까지 할 정도로, 끔찍하게 아픈 상처를 헤집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뭉뚱그려서 현실의 상황과 반죽한,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이지만 매번 너무나 생생해서 이런 꿈을 꾸고 난 아침에는 삭신이 쑤신다.

좋은 추억도 많은데 왜 아픈 기억만 되풀이 되풀이 되어 꿈 속에 나타나는 걸까 싶다가도, 내가 어떻게 그 수많은 죽음에의 유혹을 이기고 그 시절을 살아냈나 하면 대견하기도 하다. 아마도 끈질긴 생명력이 필자의 내면 그 속에서 꿈틀거려주었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하물며 삶의 대부분을 격렬하게 쌓아온 필자조차도 마땅하게 자리매김할 삶의 철학을 완성하지 못했거늘, 아직 미완성의 삶을 치열하게 탑쌓아가는 여린 청소년들에게 가차없이 불어닥치는 세파는 얼마나 모질고 험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녕 안쓰럽기 짝이 없다.

소설의 말미에 덧붙여 질문을 해본다. “소녀들이여, 차라리 고아가, 거리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답 한다. “그러나 소녀들이여, 기억하자. 차라리 고아가, 거리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이 되고 싶은 절망의 시절도 결국 ‘지나간다’라는 사실을. 계절은 바뀌고야 만다는 사실을. 겨울을 견딘 알뿌리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삶은 언제고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고대 그리스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시시포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며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인간 가운데 가장 교활한 사나이였다고 한다. 그는 때가 되어 ‘제우스’가 보낸 죽음의 신을 맞았는데, 그를 속이고 가두어 다시 지상의 삶을 연명하고, 장수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수명을 다 누리고 죽은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로,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이러한 고역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삶과 닮았다. 그런데 시시포스의 쉼 없는 노동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또다시 돌이 왜 굴러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아무 목표 없이 의미 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반복된 삶에 있다.

언젠가 다시 돌이 굴러 떨어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며 돌을 밀어 올리는 사람... 그에겐 시시포스의 형벌도 피해가지 않을까? “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한다. 노동을 미워하는 자만이 고뇌를 맛본다.” 라고 한 ‘월 헤름 브르만’의 말을 기억하자. 시작노트에서 계속 다른 문학이나 영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한 권만 더 보기로 한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이자, ‘칼데콧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역작인 ‘타샤의 정원’을 소개한다. 70여 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은 91세의 노작가는 실은 원예가로 더 유명하다. 이 책은 그녀가 ‘버몬트 주’ 시골에서 35년 넘게 홀로 가꾸어온 타샤 정원의 사계를 소개한다. 지은이가 수년 동안 타샤의 생활을 지켜보며 관찰한 정원의 매혹적인 풍경과, 타샤와 나눈 대화를 한데 모아 글과 사진으로 엮은 것이다.

30만 평의 대지에 18세기 영국식으로 꾸민 타샤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일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꽃들의 천국이자 지상 낙원이며, 자연을 존중하고 삶을 사랑하는 타샤 튜더의 낙천성과 부지런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공간이다. 염소젖을 짜고, 꽃을 가꾸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차를 마시고, 산책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그림 그리는 거의 모든 일과들이 정원에서 이루어진다.

색의 향연을 펼치는 화려한 튤립, 눈밭에서 피어나는 수선화, 탐스러운 꽃잎이 복슬대는 작약, 품위 있는 자태를 뽐내는 돌능금 나무... 그리고 자연에 깊이 뿌리내린 타샤 튜더의 소박한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내용들을 매혹적인 서술의 형식으로 덧붙여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어느 날 꽃집에 들러 화분 하나 집 안에 들여놓은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며칠간 물을 열심히 주며 보살피다가 일상에 치여 지내다 보면 무심해지기 일쑤. 그러다가도 문득 그 조그만 화분에 꽃이라도 피면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이나 디카를 들이댄다. 그렇게 우리네 마음에는 자연을 향한 그리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인생은 짧아요.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안 되죠. 나는 정원 일이 좋으니까 하고 있는 거고요. 아름다운 정원은 기쁨을 주죠.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초원에 만발한 하얀 데이지를 상상해봐요. 무수한 데이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장면을. 따로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정원에 대해서는 겸손할 수 없다는 타샤 튜더, 이 91세 할머니는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한다. 바로 장미 전문가가 되는 것. 저자의 말처럼 타샤는 ‘영원한 학생’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타샤가 정원을 마련하게 된 건 타샤가 56세 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35년간 홀로 정원을 애지중지 가꾸어왔고, 지금은 전 세계의 원예가들이 부러워하는 정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타샤의 정원이 부럽다면, 지금부터라도 타샤처럼 노력해볼 일이다. 타샤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버나드 쇼’의 짧은 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다음은 ‘타샤의 정원’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다른 아저씨와 재혼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그 아저씨와 헤어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내가 별로 예쁘지 않다고 말하더구나. 아내한테 그렇게 말하는 남자와는 같이 못 살아.” 정말 엄마다운 말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아이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 엄마는 언제나 바삐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주특기인 삽화를 그려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그린 그림책이 100권이 넘었습니다. 엄마는 항상 쉴 틈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바쁜 일상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도 우리 남매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고자 애썼습니다. 시간이 되실 때마다 인형 놀이, 쿠키 만들기,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해주셨지요.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이 자리를 잡은 어느 날, 엄마가 우리들을 불러놓고서 말했습니다. “엄마에겐 평생의 꿈이 있어. 이제 너희들도 다 컸으니 내 소원을 이루고 싶구나.” 그렇게 엄마는 56세 되던 해 산골 오지의 척박한 땅을 사서 본인 만의 멋진 집을 짓고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늘 부지런한 엄마는 금방 정원을 꽃으로 가득 채웠고,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수선화, 아카시아, 앵초, 금낭화, 튤립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물망초와 등나무꽃, 작약, 장미가 모습을 드러내며, 쌀쌀해지면 과실수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눈이 오면 온실에서 동백꽃과 아네모네가 찬란히 빛을 발하던 엄마의 정원. 20여 년이 지나 정원은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곳이 되었고, 수많은 원예가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습니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타샤 튜더입니다. 엄마는 지금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의 정원은 아직도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피웁니다.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슬퍼할 것 없다. 아쉬워할 것도 없다. 돌아보니 열심히 살아온 것 같구나. 꿈을 이뤘고 정원도 이렇게 아름답잖니?” 꿈을 잃지 않았던 엄마처럼, 엄마의 정원을 접한 사람들도 매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가 어릴 적 우리에게 늘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니?”- 그녀의 자녀가 바라본 엄마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잔잔한 고백이다.

중국 고대 ‘송나라’ 때 재상인 ‘마지절’은 서화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는 그림을 수집하여 감상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특히 ‘당나라’ 때 이름난 화가였던 ‘대주’의 작품 ‘투우’를 좋아했는데,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그림에 습기가 찰까 봐 틈만 나면 마루에 펴놓고 말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가 소작료를 바치러 왔다가 먼 발치에서 그 그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를 본 마지절이 농부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 그림은 당나라 대가인 대주의 작품이다.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웃는 것이냐?” 그러자 농부는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같은 농사만 하는 농부가 뭘 알겠습니까? 다만 저는 소를 많이 키워봤기 때문에 이상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마지절은 궁금해서 농부에게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농부는 마지절에게 대답했다.

“소는 싸울 때 뿔로 상대편을 받으며 공격하지만 꼬리는 바싹 당겨서 사타구니에 끼웁니다. 힘센 청년이라도 그 꼬리를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소들은 싸우면서 꼬리를 치켜 올라가 있으니 말이 되지 않아 웃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마지절은 농부에게 말했다. “대주는 이름난 화가이지만 소에 대해서는 너무도 몰랐구나. 이 그림을 애지중지한 내가 부끄럽다.”

때론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지식 보다 살면서 체득한 지혜로 상황을 대처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백발 어르신의 한숨, 한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의 갈라진 손... 생각보다 스승은 아주 가까운 데 있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일상의 대상들에게서 우리는 늘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열 살 된 아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몇 시간을 낚싯대 앞에 앉아 있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낚시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아버지의 낚싯대에 큰 물고기가 걸렸다. 아버지는 흐뭇해하며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를 비춰보았는데, 배가 볼록한 것이 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어종 보호를 위해 산란 어종 낚시를 금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이 물고기는 풀어주고 그만 가자꾸나.” 그러자 아들은 억울해하며 말했다. “안 돼요.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은 건 처음인데요.” 펄떡이는 물고기를 내려다보는 아들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아들에게 물고기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정직하고 모범적인 경영자로 뽑혀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제껏 아버지를 따라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와 낚시를 하면서 배운 원칙이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원칙이란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혹은 바보 같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미련하게, 원칙과 정직을 지키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부유할 때 원칙을 지키기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난할 때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1946년 ‘뉴욕’의 ‘헬스 키친’이라는 빈민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의사의 실수로 왼쪽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다. 어눌한 말투와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9살 때는 부모님이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바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배역은 별로 없었다. 단역 배우로는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화관 안내인,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보디가드... 어느덧 서른 살이 된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1975년 3월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무명의 복서 ‘척 웨프너’가 벌인 복싱 경기를 보고 비장한 각오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성한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을 찾아다녔다. “이 대본을 사용해 주시고, 저를 주연으로 써 주세요!” 그의 허무맹랑한 제안에 대부분의 제작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한 곳에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명배우를 쓰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제작자는 조건을 달았다.

“좋습니다. 대신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줄이세요.” 영화는 불과 28일 만에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예외 없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 중 태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극장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의 이름은 ‘록키’, 그의 이름은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영화 주인공 록키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KO패를 당하지 않고 15회전을 버티는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 그것의 인생 드라마다. 그러니 진정 바라는 것이 있다면, 꿈이 있다면... 죽을 힘을 다해 간절하게 매달리고 노력해보자.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이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영화 록키의 대사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다.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되는 법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다. 소유한 것에 대해서, 또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쉬이 무감각해지고, 또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향해, 그리고 쟁취를 위해 삶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삶인 듯 하다.

하지만, 때로 그 욕망이 너무 커지다 보면 주(主)와 객(客)이 바뀌는 형국이 되어질 수 있다.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혼란이 오게 된다. 목표 의식은 자기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중심을 잃게 되면 자기 자신이 그 목표의 노예가 된다. 삶을 내가 다스리느냐, 내가 목표하는 삶의 노예가 되느냐... 왜?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갖는다는 것은, 자칫 균형을 잃을 수도 있는 나의 삶을 바로 세우고 부축할 수 있는 건강한 지지대 하나 마련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가을 추억을 한아름 담은 추억의 비가 자주 내린다. 이 가을을 갈무리하면서 소중하게 감싸안은 추억들을, 빗방울만큼 하많은 소망으로 터바꿈하느라 제법 분주한 마음 갖고 오늘을 시작해본다.

- 시작노트 -

목하 만추지절이다. 가뜩이나 짧은 가을이 이따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더욱 수명 단축의 비명을 지른다. 지금은 하루 하루 쌀쌀한 바람이 세상을 도배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바야흐로 다음 주쯤이면 겨울이라는 소리 나올 법도 하다. 이름하여 환절기의 극점에 서서 오늘을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아! 가을의 끝자락이라, 더 늦기 전에 눈꼽만큼 남은 감성과 낭만이나마 송두리째 반죽해서 마지막 가을 추억을 빚어야겠다. 회한이 없도록...


그는 ‘7인의 여포로’(1965)로 옥고를 치루는 과정에서 휴가차 나왔다가 작가 김지헌을 만나 “여자가 죄를 짓고 형무소에 갔다가 나오면 제일 먼저 어디를 갈까? 형무소에서 오래 있던 여자가 세상에 나오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을까?”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화두를 쫓아 김지헌은 3개월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이만희가 전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겨냥해서 영화촬영에 들어갔다. 촬영 장소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창경원’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를 세트로 세워 20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서정민’의 카메라는 흑백의 절묘한 톤으로 두 사람의 심리와 성격의 미묘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라스트신에서 동물원 우리에 갇힌 낙타의 목마른 표정, 벤치 아래 우수수 지는 낙엽 등 고도로 짜인 영상은 객석을 무거운 침묵으로 몰아넣었다고 평가받는다. ‘문정숙’의 노래 “겨울이 가고 따뜻한 해가 웃으며 떠오르면…” 주제가와 바바리코트 깃을 올리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수에 찬 주인공의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수려하고 짜임새 있는 영상미학 속에 담겨진 남녀의 애틋한 사랑은 개봉 당시 관객들을 감동시켰고, 이만희 자신도 “작가의 리얼리즘의 성숙은 ‘흑맥’으로 시작되어 ‘시장’을 거쳐 ‘만추’에 이르러 확고한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의 획을 긋는다.”고 자평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제5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감독상·남녀연기상·시나리오상’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추억의 명화 중 대표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신성일’과 ‘문정숙’이 출연한 이 영화는 당시 ‘명보극장’에서만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1975년 ‘김기영’ 감독, ‘김지미’ 주연으로 ‘육체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1982년에 ‘김수용(金洙容)’ 감독, ‘김혜자(金惠子)’ 주연으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신인감독인 ‘사이토 고이치’가 ‘약속’이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일본영화 베스트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에 속하면서 영원한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2011년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ㆍ현빈’을 주연으로 하여 다시 한 번 리메이크 제작함으로써, 기존 영화를 미처 접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변함없는 위용을 뽐내기도 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언제 어디서든 기회가 된다면, 원작이거나 아류작에 구애받지 말고 꼭 한 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영화라도 한 편 감상하면서 늦은 가을을 만끽하다보면 어느새 피부를 통해 다가서는 또 다른 계절의 맛을 느끼기 시작할 거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환절기’라고 부른다. 물론 환절기는 계절과 계절 사이에 끼어, 다음 계절이 열리는 입구 정도의 역할을 하는 시기인지라 한 해에 네 번이나 존재한다. 그래도 다른 환절기는 별로 실감이 안나고, 유난스레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시작되는 이즈막이라야 비로소 환절기라고 이름 하기에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이번에는 이 환절기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책을 한 권 보자. 제목 자체가 바로 ‘환절기’라는 2006년에 발간된 소설이다. ‘차라리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차라리 거리의 풀 한 포기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평택의 중학생 ‘정수경’ 양의 이야기를 접하고 쓴 성장소설이다. 죽음보다 더 혹독한 시련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진실을, 아픈 성장 이야기를 통해 그려냈다. ‘제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정애’의 작품이다.

위안부였던 할머니,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다 심하게 고문을 당한 아버지, 집을 나간 어머니... 수경이에게는 꿈을 꾸는 것도 사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던 수경이는 포항에 살고 있는 고향 사람 목순네의 도움을 받아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러다, 수경이는 목순의 아들 병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수경이는 할머니의 친구였던 봉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할머니는 수경이에게 ‘살다 살다 정 못 살겠으면’ 봉선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일러줬던 것. 할머니는 수경이에게 담담하지만 치열하게 삶에 맞서 싸우는 법을 말해준다. 봉선 할머니를 통해 느껴지는, 바람에 휘어지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강인함을 통해 희망이라는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봄빛같은 것이 아니라, 끝내 해내고 말겠다는 단단한 의지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지만 끝내 희망만은 놓지 않은 강인한 여자 아이의 성장 이야기가 시종일관 묵직한 감동을 전해준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면 메떡같이 푸석한데 그가 하면 찰떡같이 쫀득해지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박정애야 말로 딱 그런 사람이다. 힘겨운 삶의 고비를 넘어가는 위안부 할머니와 고아 소녀의 모습에서 흔한 신파나 동정은 없다. 당당하게 삶에 맞서는 그들의 투지는 수라상같이 풍성하고 잔칫집같이 흥겹다. 거친 멥쌀 같은 현실이 박정애라는 무거운 떡메로 수천 번 치대이고 두드려졌으니, 소설의 그 맛은 찰떡같이 쫀득하고 입에 감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수경은 분명히 소녀다. 그런데 소녀라는 말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기 마련인 어떤 호사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단절된 여주인공이다. 삶의 벌거벗은 진실과 일찍이 부딪쳐 어두운 터널 안을 더듬거리며 헤쳐가듯 최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통상적 성장소설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풍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자기 안의 어둠인 양 포옹하고, 상처받은 여성의 영혼과 육체를 집합적 부활의 터전으로 섬세하게 재구축하는 작가의 속정 깊은 붓끝은 차라리 축복이다.

유년을 상실한 이 땅의 모든 소녀들의 참된 소녀성에 헌정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욱 성장소설의 본령에 다가가는 역설을 보여준다 하겠다. 어느덧 육십대 중반으로 다가서는 필자가 지금도 꾸곤 하는 악몽의 목록이 있다. 차라리 죽는 것 보다도 힘들어서, 다시는 잠 들지 말아야겠다는 헛된 다짐까지 할 정도로, 끔찍하게 아픈 상처를 헤집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뭉뚱그려서 현실의 상황과 반죽한,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이지만 매번 너무나 생생해서 이런 꿈을 꾸고 난 아침에는 삭신이 쑤신다.

좋은 추억도 많은데 왜 아픈 기억만 되풀이 되풀이 되어 꿈 속에 나타나는 걸까 싶다가도, 내가 어떻게 그 수많은 죽음에의 유혹을 이기고 그 시절을 살아냈나 하면 대견하기도 하다. 아마도 끈질긴 생명력이 필자의 내면 그 속에서 꿈틀거려주었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하물며 삶의 대부분을 격렬하게 쌓아온 필자조차도 마땅하게 자리매김할 삶의 철학을 완성하지 못했거늘, 아직 미완성의 삶을 치열하게 탑쌓아가는 여린 청소년들에게 가차없이 불어닥치는 세파는 얼마나 모질고 험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녕 안쓰럽기 짝이 없다.

소설의 말미에 덧붙여 질문을 해본다. “소녀들이여, 차라리 고아가, 거리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답 한다. “그러나 소녀들이여, 기억하자. 차라리 고아가, 거리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이 되고 싶은 절망의 시절도 결국 ‘지나간다’라는 사실을. 계절은 바뀌고야 만다는 사실을. 겨울을 견딘 알뿌리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삶은 언제고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고대 그리스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시시포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며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인간 가운데 가장 교활한 사나이였다고 한다. 그는 때가 되어 ‘제우스’가 보낸 죽음의 신을 맞았는데, 그를 속이고 가두어 다시 지상의 삶을 연명하고, 장수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수명을 다 누리고 죽은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로,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이러한 고역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삶과 닮았다. 그런데 시시포스의 쉼 없는 노동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또다시 돌이 왜 굴러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아무 목표 없이 의미 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반복된 삶에 있다.

언젠가 다시 돌이 굴러 떨어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며 돌을 밀어 올리는 사람... 그에겐 시시포스의 형벌도 피해가지 않을까? “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한다. 노동을 미워하는 자만이 고뇌를 맛본다.” 라고 한 ‘월 헤름 브르만’의 말을 기억하자. 시작노트에서 계속 다른 문학이나 영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한 권만 더 보기로 한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이자, ‘칼데콧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역작인 ‘타샤의 정원’을 소개한다. 70여 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은 91세의 노작가는 실은 원예가로 더 유명하다. 이 책은 그녀가 ‘버몬트 주’ 시골에서 35년 넘게 홀로 가꾸어온 타샤 정원의 사계를 소개한다. 지은이가 수년 동안 타샤의 생활을 지켜보며 관찰한 정원의 매혹적인 풍경과, 타샤와 나눈 대화를 한데 모아 글과 사진으로 엮은 것이다.

30만 평의 대지에 18세기 영국식으로 꾸민 타샤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일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꽃들의 천국이자 지상 낙원이며, 자연을 존중하고 삶을 사랑하는 타샤 튜더의 낙천성과 부지런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공간이다. 염소젖을 짜고, 꽃을 가꾸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차를 마시고, 산책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그림 그리는 거의 모든 일과들이 정원에서 이루어진다.

색의 향연을 펼치는 화려한 튤립, 눈밭에서 피어나는 수선화, 탐스러운 꽃잎이 복슬대는 작약, 품위 있는 자태를 뽐내는 돌능금 나무... 그리고 자연에 깊이 뿌리내린 타샤 튜더의 소박한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내용들을 매혹적인 서술의 형식으로 덧붙여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어느 날 꽃집에 들러 화분 하나 집 안에 들여놓은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며칠간 물을 열심히 주며 보살피다가 일상에 치여 지내다 보면 무심해지기 일쑤. 그러다가도 문득 그 조그만 화분에 꽃이라도 피면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이나 디카를 들이댄다. 그렇게 우리네 마음에는 자연을 향한 그리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인생은 짧아요.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안 되죠. 나는 정원 일이 좋으니까 하고 있는 거고요. 아름다운 정원은 기쁨을 주죠.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초원에 만발한 하얀 데이지를 상상해봐요. 무수한 데이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장면을. 따로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정원에 대해서는 겸손할 수 없다는 타샤 튜더, 이 91세 할머니는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한다. 바로 장미 전문가가 되는 것. 저자의 말처럼 타샤는 ‘영원한 학생’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타샤가 정원을 마련하게 된 건 타샤가 56세 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35년간 홀로 정원을 애지중지 가꾸어왔고, 지금은 전 세계의 원예가들이 부러워하는 정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타샤의 정원이 부럽다면, 지금부터라도 타샤처럼 노력해볼 일이다. 타샤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버나드 쇼’의 짧은 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다음은 ‘타샤의 정원’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다른 아저씨와 재혼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그 아저씨와 헤어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내가 별로 예쁘지 않다고 말하더구나. 아내한테 그렇게 말하는 남자와는 같이 못 살아.” 정말 엄마다운 말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아이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 엄마는 언제나 바삐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주특기인 삽화를 그려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그린 그림책이 100권이 넘었습니다. 엄마는 항상 쉴 틈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바쁜 일상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도 우리 남매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고자 애썼습니다. 시간이 되실 때마다 인형 놀이, 쿠키 만들기,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해주셨지요.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이 자리를 잡은 어느 날, 엄마가 우리들을 불러놓고서 말했습니다. “엄마에겐 평생의 꿈이 있어. 이제 너희들도 다 컸으니 내 소원을 이루고 싶구나.” 그렇게 엄마는 56세 되던 해 산골 오지의 척박한 땅을 사서 본인 만의 멋진 집을 짓고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늘 부지런한 엄마는 금방 정원을 꽃으로 가득 채웠고,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수선화, 아카시아, 앵초, 금낭화, 튤립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물망초와 등나무꽃, 작약, 장미가 모습을 드러내며, 쌀쌀해지면 과실수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눈이 오면 온실에서 동백꽃과 아네모네가 찬란히 빛을 발하던 엄마의 정원. 20여 년이 지나 정원은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곳이 되었고, 수많은 원예가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습니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타샤 튜더입니다. 엄마는 지금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의 정원은 아직도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피웁니다.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슬퍼할 것 없다. 아쉬워할 것도 없다. 돌아보니 열심히 살아온 것 같구나. 꿈을 이뤘고 정원도 이렇게 아름답잖니?” 꿈을 잃지 않았던 엄마처럼, 엄마의 정원을 접한 사람들도 매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가 어릴 적 우리에게 늘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니?”- 그녀의 자녀가 바라본 엄마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잔잔한 고백이다.

중국 고대 ‘송나라’ 때 재상인 ‘마지절’은 서화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는 그림을 수집하여 감상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특히 ‘당나라’ 때 이름난 화가였던 ‘대주’의 작품 ‘투우’를 좋아했는데,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그림에 습기가 찰까 봐 틈만 나면 마루에 펴놓고 말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가 소작료를 바치러 왔다가 먼 발치에서 그 그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를 본 마지절이 농부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 그림은 당나라 대가인 대주의 작품이다.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웃는 것이냐?” 그러자 농부는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같은 농사만 하는 농부가 뭘 알겠습니까? 다만 저는 소를 많이 키워봤기 때문에 이상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마지절은 궁금해서 농부에게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농부는 마지절에게 대답했다.

“소는 싸울 때 뿔로 상대편을 받으며 공격하지만 꼬리는 바싹 당겨서 사타구니에 끼웁니다. 힘센 청년이라도 그 꼬리를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소들은 싸우면서 꼬리를 치켜 올라가 있으니 말이 되지 않아 웃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마지절은 농부에게 말했다. “대주는 이름난 화가이지만 소에 대해서는 너무도 몰랐구나. 이 그림을 애지중지한 내가 부끄럽다.”

때론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지식 보다 살면서 체득한 지혜로 상황을 대처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백발 어르신의 한숨, 한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의 갈라진 손... 생각보다 스승은 아주 가까운 데 있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일상의 대상들에게서 우리는 늘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열 살 된 아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몇 시간을 낚싯대 앞에 앉아 있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낚시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아버지의 낚싯대에 큰 물고기가 걸렸다. 아버지는 흐뭇해하며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를 비춰보았는데, 배가 볼록한 것이 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어종 보호를 위해 산란 어종 낚시를 금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이 물고기는 풀어주고 그만 가자꾸나.” 그러자 아들은 억울해하며 말했다. “안 돼요.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은 건 처음인데요.” 펄떡이는 물고기를 내려다보는 아들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아들에게 물고기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정직하고 모범적인 경영자로 뽑혀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제껏 아버지를 따라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와 낚시를 하면서 배운 원칙이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원칙이란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혹은 바보 같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미련하게, 원칙과 정직을 지키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부유할 때 원칙을 지키기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난할 때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1946년 ‘뉴욕’의 ‘헬스 키친’이라는 빈민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의사의 실수로 왼쪽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다. 어눌한 말투와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9살 때는 부모님이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바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배역은 별로 없었다. 단역 배우로는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화관 안내인,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보디가드... 어느덧 서른 살이 된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1975년 3월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무명의 복서 ‘척 웨프너’가 벌인 복싱 경기를 보고 비장한 각오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성한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을 찾아다녔다. “이 대본을 사용해 주시고, 저를 주연으로 써 주세요!” 그의 허무맹랑한 제안에 대부분의 제작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한 곳에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명배우를 쓰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제작자는 조건을 달았다.

“좋습니다. 대신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줄이세요.” 영화는 불과 28일 만에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예외 없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 중 태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극장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의 이름은 ‘록키’, 그의 이름은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영화 주인공 록키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KO패를 당하지 않고 15회전을 버티는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 그것의 인생 드라마다. 그러니 진정 바라는 것이 있다면, 꿈이 있다면... 죽을 힘을 다해 간절하게 매달리고 노력해보자.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이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영화 록키의 대사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다.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되는 법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다. 소유한 것에 대해서, 또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쉬이 무감각해지고, 또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향해, 그리고 쟁취를 위해 삶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삶인 듯 하다.

하지만, 때로 그 욕망이 너무 커지다 보면 주(主)와 객(客)이 바뀌는 형국이 되어질 수 있다.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혼란이 오게 된다. 목표 의식은 자기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중심을 잃게 되면 자기 자신이 그 목표의 노예가 된다. 삶을 내가 다스리느냐, 내가 목표하는 삶의 노예가 되느냐... 왜?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갖는다는 것은, 자칫 균형을 잃을 수도 있는 나의 삶을 바로 세우고 부축할 수 있는 건강한 지지대 하나 마련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가을 추억을 한아름 담은 추억의 비가 자주 내린다. 이 가을을 갈무리하면서 소중하게 감싸안은 추억들을, 빗방울만큼 하많은 소망으로 터바꿈하느라 제법 분주한 마음 갖고 오늘을 시작해본다.

23번 째 연출작으로 ‘호현찬 프로덕션’이 1966년에 제작했던 이 영화는 한 여죄수와 떠돌이 위조지폐범 간의 3일간의 덧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특별히 ‘김지헌’의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영화대본으로서가 아니라 ‘문학성을 지닌 문학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은 연출자인 이만희다.

그는 ‘7인의 여포로’(1965)로 옥고를 치루는 과정에서 휴가차 나왔다가 작가 김지헌을 만나 “여자가 죄를 짓고 형무소에 갔다가 나오면 제일 먼저 어디를 갈까? 형무소에서 오래 있던 여자가 세상에 나오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을까?”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화두를 쫓아 김지헌은 3개월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이만희가 전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겨냥해서 영화촬영에 들어갔다. 촬영 장소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창경원’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를 세트로 세워 20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서정민’의 카메라는 흑백의 절묘한 톤으로 두 사람의 심리와 성격의 미묘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라스트신에서 동물원 우리에 갇힌 낙타의 목마른 표정, 벤치 아래 우수수 지는 낙엽 등 고도로 짜인 영상은 객석을 무거운 침묵으로 몰아넣었다고 평가받는다. ‘문정숙’의 노래 “겨울이 가고 따뜻한 해가 웃으며 떠오르면…” 주제가와 바바리코트 깃을 올리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수에 찬 주인공의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수려하고 짜임새 있는 영상미학 속에 담겨진 남녀의 애틋한 사랑은 개봉 당시 관객들을 감동시켰고, 이만희 자신도 “작가의 리얼리즘의 성숙은 ‘흑맥’으로 시작되어 ‘시장’을 거쳐 ‘만추’에 이르러 확고한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의 획을 긋는다.”고 자평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제5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감독상·남녀연기상·시나리오상’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추억의 명화 중 대표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신성일’과 ‘문정숙’이 출연한 이 영화는 당시 ‘명보극장’에서만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1975년 ‘김기영’ 감독, ‘김지미’ 주연으로 ‘육체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1982년에 ‘김수용(金洙容)’ 감독, ‘김혜자(金惠子)’ 주연으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신인감독인 ‘사이토 고이치’가 ‘약속’이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일본영화 베스트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에 속하면서 영원한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2011년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ㆍ현빈’을 주연으로 하여 다시 한 번 리메이크 제작함으로써, 기존 영화를 미처 접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변함없는 위용을 뽐내기도 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언제 어디서든 기회가 된다면, 원작이거나 아류작에 구애받지 말고 꼭 한 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영화라도 한 편 감상하면서 늦은 가을을 만끽하다보면 어느새 피부를 통해 다가서는 또 다른 계절의 맛을 느끼기 시작할 거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환절기’라고 부른다. 물론 환절기는 계절과 계절 사이에 끼어, 다음 계절이 열리는 입구 정도의 역할을 하는 시기인지라 한 해에 네 번이나 존재한다. 그래도 다른 환절기는 별로 실감이 안나고, 유난스레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시작되는 이즈막이라야 비로소 환절기라고 이름 하기에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이번에는 이 환절기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책을 한 권 보자. 제목 자체가 바로 ‘환절기’라는 2006년에 발간된 소설이다. ‘차라리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차라리 거리의 풀 한 포기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평택의 중학생 ‘정수경’ 양의 이야기를 접하고 쓴 성장소설이다. 죽음보다 더 혹독한 시련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진실을, 아픈 성장 이야기를 통해 그려냈다. ‘제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정애’의 작품이다.

위안부였던 할머니,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다 심하게 고문을 당한 아버지, 집을 나간 어머니... 수경이에게는 꿈을 꾸는 것도 사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던 수경이는 포항에 살고 있는 고향 사람 목순네의 도움을 받아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러다, 수경이는 목순의 아들 병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수경이는 할머니의 친구였던 봉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할머니는 수경이에게 ‘살다 살다 정 못 살겠으면’ 봉선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일러줬던 것. 할머니는 수경이에게 담담하지만 치열하게 삶에 맞서 싸우는 법을 말해준다. 봉선 할머니를 통해 느껴지는, 바람에 휘어지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강인함을 통해 희망이라는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봄빛같은 것이 아니라, 끝내 해내고 말겠다는 단단한 의지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지만 끝내 희망만은 놓지 않은 강인한 여자 아이의 성장 이야기가 시종일관 묵직한 감동을 전해준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면 메떡같이 푸석한데 그가 하면 찰떡같이 쫀득해지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박정애야 말로 딱 그런 사람이다. 힘겨운 삶의 고비를 넘어가는 위안부 할머니와 고아 소녀의 모습에서 흔한 신파나 동정은 없다. 당당하게 삶에 맞서는 그들의 투지는 수라상같이 풍성하고 잔칫집같이 흥겹다. 거친 멥쌀 같은 현실이 박정애라는 무거운 떡메로 수천 번 치대이고 두드려졌으니, 소설의 그 맛은 찰떡같이 쫀득하고 입에 감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수경은 분명히 소녀다. 그런데 소녀라는 말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기 마련인 어떤 호사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단절된 여주인공이다. 삶의 벌거벗은 진실과 일찍이 부딪쳐 어두운 터널 안을 더듬거리며 헤쳐가듯 최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통상적 성장소설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풍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자기 안의 어둠인 양 포옹하고, 상처받은 여성의 영혼과 육체를 집합적 부활의 터전으로 섬세하게 재구축하는 작가의 속정 깊은 붓끝은 차라리 축복이다.

유년을 상실한 이 땅의 모든 소녀들의 참된 소녀성에 헌정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욱 성장소설의 본령에 다가가는 역설을 보여준다 하겠다. 어느덧 육십대 중반으로 다가서는 필자가 지금도 꾸곤 하는 악몽의 목록이 있다. 차라리 죽는 것 보다도 힘들어서, 다시는 잠 들지 말아야겠다는 헛된 다짐까지 할 정도로, 끔찍하게 아픈 상처를 헤집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뭉뚱그려서 현실의 상황과 반죽한,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이지만 매번 너무나 생생해서 이런 꿈을 꾸고 난 아침에는 삭신이 쑤신다.

좋은 추억도 많은데 왜 아픈 기억만 되풀이 되풀이 되어 꿈 속에 나타나는 걸까 싶다가도, 내가 어떻게 그 수많은 죽음에의 유혹을 이기고 그 시절을 살아냈나 하면 대견하기도 하다. 아마도 끈질긴 생명력이 필자의 내면 그 속에서 꿈틀거려주었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하물며 삶의 대부분을 격렬하게 쌓아온 필자조차도 마땅하게 자리매김할 삶의 철학을 완성하지 못했거늘, 아직 미완성의 삶을 치열하게 탑쌓아가는 여린 청소년들에게 가차없이 불어닥치는 세파는 얼마나 모질고 험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녕 안쓰럽기 짝이 없다.

소설의 말미에 덧붙여 질문을 해본다. “소녀들이여, 차라리 고아가, 거리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답 한다. “그러나 소녀들이여, 기억하자. 차라리 고아가, 거리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이 되고 싶은 절망의 시절도 결국 ‘지나간다’라는 사실을. 계절은 바뀌고야 만다는 사실을. 겨울을 견딘 알뿌리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삶은 언제고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고대 그리스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시시포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며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인간 가운데 가장 교활한 사나이였다고 한다. 그는 때가 되어 ‘제우스’가 보낸 죽음의 신을 맞았는데, 그를 속이고 가두어 다시 지상의 삶을 연명하고, 장수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수명을 다 누리고 죽은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로,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이러한 고역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삶과 닮았다. 그런데 시시포스의 쉼 없는 노동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또다시 돌이 왜 굴러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아무 목표 없이 의미 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반복된 삶에 있다.

언젠가 다시 돌이 굴러 떨어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며 돌을 밀어 올리는 사람... 그에겐 시시포스의 형벌도 피해가지 않을까? “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한다. 노동을 미워하는 자만이 고뇌를 맛본다.” 라고 한 ‘월 헤름 브르만’의 말을 기억하자. 시작노트에서 계속 다른 문학이나 영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한 권만 더 보기로 한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이자, ‘칼데콧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역작인 ‘타샤의 정원’을 소개한다. 70여 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은 91세의 노작가는 실은 원예가로 더 유명하다. 이 책은 그녀가 ‘버몬트 주’ 시골에서 35년 넘게 홀로 가꾸어온 타샤 정원의 사계를 소개한다. 지은이가 수년 동안 타샤의 생활을 지켜보며 관찰한 정원의 매혹적인 풍경과, 타샤와 나눈 대화를 한데 모아 글과 사진으로 엮은 것이다.

30만 평의 대지에 18세기 영국식으로 꾸민 타샤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일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꽃들의 천국이자 지상 낙원이며, 자연을 존중하고 삶을 사랑하는 타샤 튜더의 낙천성과 부지런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공간이다. 염소젖을 짜고, 꽃을 가꾸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차를 마시고, 산책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그림 그리는 거의 모든 일과들이 정원에서 이루어진다.

색의 향연을 펼치는 화려한 튤립, 눈밭에서 피어나는 수선화, 탐스러운 꽃잎이 복슬대는 작약, 품위 있는 자태를 뽐내는 돌능금 나무... 그리고 자연에 깊이 뿌리내린 타샤 튜더의 소박한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내용들을 매혹적인 서술의 형식으로 덧붙여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어느 날 꽃집에 들러 화분 하나 집 안에 들여놓은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며칠간 물을 열심히 주며 보살피다가 일상에 치여 지내다 보면 무심해지기 일쑤. 그러다가도 문득 그 조그만 화분에 꽃이라도 피면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이나 디카를 들이댄다. 그렇게 우리네 마음에는 자연을 향한 그리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인생은 짧아요.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안 되죠. 나는 정원 일이 좋으니까 하고 있는 거고요. 아름다운 정원은 기쁨을 주죠.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초원에 만발한 하얀 데이지를 상상해봐요. 무수한 데이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장면을. 따로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정원에 대해서는 겸손할 수 없다는 타샤 튜더, 이 91세 할머니는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한다. 바로 장미 전문가가 되는 것. 저자의 말처럼 타샤는 ‘영원한 학생’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타샤가 정원을 마련하게 된 건 타샤가 56세 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35년간 홀로 정원을 애지중지 가꾸어왔고, 지금은 전 세계의 원예가들이 부러워하는 정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타샤의 정원이 부럽다면, 지금부터라도 타샤처럼 노력해볼 일이다. 타샤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버나드 쇼’의 짧은 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다음은 ‘타샤의 정원’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다른 아저씨와 재혼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그 아저씨와 헤어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내가 별로 예쁘지 않다고 말하더구나. 아내한테 그렇게 말하는 남자와는 같이 못 살아.” 정말 엄마다운 말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아이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 엄마는 언제나 바삐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주특기인 삽화를 그려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그린 그림책이 100권이 넘었습니다. 엄마는 항상 쉴 틈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바쁜 일상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도 우리 남매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고자 애썼습니다. 시간이 되실 때마다 인형 놀이, 쿠키 만들기,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해주셨지요.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이 자리를 잡은 어느 날, 엄마가 우리들을 불러놓고서 말했습니다. “엄마에겐 평생의 꿈이 있어. 이제 너희들도 다 컸으니 내 소원을 이루고 싶구나.” 그렇게 엄마는 56세 되던 해 산골 오지의 척박한 땅을 사서 본인 만의 멋진 집을 짓고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늘 부지런한 엄마는 금방 정원을 꽃으로 가득 채웠고,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수선화, 아카시아, 앵초, 금낭화, 튤립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물망초와 등나무꽃, 작약, 장미가 모습을 드러내며, 쌀쌀해지면 과실수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눈이 오면 온실에서 동백꽃과 아네모네가 찬란히 빛을 발하던 엄마의 정원. 20여 년이 지나 정원은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곳이 되었고, 수많은 원예가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습니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타샤 튜더입니다. 엄마는 지금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의 정원은 아직도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피웁니다.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슬퍼할 것 없다. 아쉬워할 것도 없다. 돌아보니 열심히 살아온 것 같구나. 꿈을 이뤘고 정원도 이렇게 아름답잖니?” 꿈을 잃지 않았던 엄마처럼, 엄마의 정원을 접한 사람들도 매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가 어릴 적 우리에게 늘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니?”- 그녀의 자녀가 바라본 엄마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잔잔한 고백이다.

중국 고대 ‘송나라’ 때 재상인 ‘마지절’은 서화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는 그림을 수집하여 감상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특히 ‘당나라’ 때 이름난 화가였던 ‘대주’의 작품 ‘투우’를 좋아했는데,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그림에 습기가 찰까 봐 틈만 나면 마루에 펴놓고 말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가 소작료를 바치러 왔다가 먼 발치에서 그 그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를 본 마지절이 농부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 그림은 당나라 대가인 대주의 작품이다.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웃는 것이냐?” 그러자 농부는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같은 농사만 하는 농부가 뭘 알겠습니까? 다만 저는 소를 많이 키워봤기 때문에 이상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마지절은 궁금해서 농부에게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농부는 마지절에게 대답했다.

“소는 싸울 때 뿔로 상대편을 받으며 공격하지만 꼬리는 바싹 당겨서 사타구니에 끼웁니다. 힘센 청년이라도 그 꼬리를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소들은 싸우면서 꼬리를 치켜 올라가 있으니 말이 되지 않아 웃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마지절은 농부에게 말했다. “대주는 이름난 화가이지만 소에 대해서는 너무도 몰랐구나. 이 그림을 애지중지한 내가 부끄럽다.”

때론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지식 보다 살면서 체득한 지혜로 상황을 대처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백발 어르신의 한숨, 한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의 갈라진 손... 생각보다 스승은 아주 가까운 데 있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일상의 대상들에게서 우리는 늘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열 살 된 아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몇 시간을 낚싯대 앞에 앉아 있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낚시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아버지의 낚싯대에 큰 물고기가 걸렸다. 아버지는 흐뭇해하며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를 비춰보았는데, 배가 볼록한 것이 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어종 보호를 위해 산란 어종 낚시를 금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이 물고기는 풀어주고 그만 가자꾸나.” 그러자 아들은 억울해하며 말했다. “안 돼요.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은 건 처음인데요.” 펄떡이는 물고기를 내려다보는 아들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아들에게 물고기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정직하고 모범적인 경영자로 뽑혀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제껏 아버지를 따라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와 낚시를 하면서 배운 원칙이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원칙이란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혹은 바보 같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미련하게, 원칙과 정직을 지키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부유할 때 원칙을 지키기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난할 때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1946년 ‘뉴욕’의 ‘헬스 키친’이라는 빈민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의사의 실수로 왼쪽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다. 어눌한 말투와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9살 때는 부모님이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바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배역은 별로 없었다. 단역 배우로는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화관 안내인,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보디가드... 어느덧 서른 살이 된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1975년 3월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무명의 복서 ‘척 웨프너’가 벌인 복싱 경기를 보고 비장한 각오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성한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을 찾아다녔다. “이 대본을 사용해 주시고, 저를 주연으로 써 주세요!” 그의 허무맹랑한 제안에 대부분의 제작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한 곳에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명배우를 쓰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제작자는 조건을 달았다.

“좋습니다. 대신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줄이세요.” 영화는 불과 28일 만에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예외 없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 중 태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극장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의 이름은 ‘록키’, 그의 이름은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영화 주인공 록키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KO패를 당하지 않고 15회전을 버티는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 그것의 인생 드라마다. 그러니 진정 바라는 것이 있다면, 꿈이 있다면... 죽을 힘을 다해 간절하게 매달리고 노력해보자.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이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영화 록키의 대사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다.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되는 법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다. 소유한 것에 대해서, 또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쉬이 무감각해지고, 또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향해, 그리고 쟁취를 위해 삶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삶인 듯 하다.

하지만, 때로 그 욕망이 너무 커지다 보면 주(主)와 객(客)이 바뀌는 형국이 되어질 수 있다.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혼란이 오게 된다. 목표 의식은 자기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중심을 잃게 되면 자기 자신이 그 목표의 노예가 된다. 삶을 내가 다스리느냐, 내가 목표하는 삶의 노예가 되느냐... 왜?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갖는다는 것은, 자칫 균형을 잃을 수도 있는 나의 삶을 바로 세우고 부축할 수 있는 건강한 지지대 하나 마련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가을 추억을 한아름 담은 추억의 비가 자주 내린다. 이 가을을 갈무리하면서 소중하게 감싸안은 추억들을, 빗방울만큼 하많은 소망으로 터바꿈하느라 제법 분주한 마음 갖고 오늘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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