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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림삼초대시 '청지기의 종탑 아~멘'

청지기의 삶으로 진솔하게 숨쉬며 매일같이 푸르른 행복과 화평을 꿈꾸는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詩作NOTE -

 시 제목만 읽으면 누구라도 깜빡 속게 마련이다. 필자조차도 속아넘어갈 뻔 했으니까. 얼마나 엄중하고 거룩한 제목인지 금세 숙연해지고 옷깃을 여미게 되지 않는가? 그러나, 영혼을 탈탈 털어서 오직 믿음과 순종의 일념으로 빚어낸 시인가 보구나.’ 하는 추측과 함께 읽다 보면 곧바로 뭐가 이래?’ 하고는 자동적으로 배신감을 느끼면서 절로 육두문자가 떠오르게 될 게다.

 

요렇게 독자들을 속여먹는 재미로 필자는 심술맞은 시를 자주 짓는다. 그것도 즉석에서는 들키지 않으려고, 어렵고도 난해한 시어들을 찾아내서는 이리 꼬고 저리 비틀어서 읽는 이들을 현혹시키면서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가 어렵고도 어렵다는 비평을 공식처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생을 길들여온 습관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항변하면서, 그저 숙명인 양 필자조차 이해하지 못할 시 나부랭이들을 줄곧 생산해내고 있으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무익한 존재로 적당히 만족한 척 하면서 살아가는 사실도 모르고 있음이다.

 

이 시는 얼추 2년 쯤 전에 지은 시다. 당시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엉키기만 하는 터수에 심사가 답답하고 고단하여 고질적으로 방황하면서 짓게 되었을 거다. 실상 지금이라고 만사가 형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과 꿈을 새로이 설정해놓고 앞만 보며 줄달음질 하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조금은 더 암울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몰해 있을 적의 이야기인지라, 딴에는 제법 갈구와 염원의 속내를 함축시키려 애를 쓴 흔적이 보이기는 한다.

 

예컨대 그런 갈등과 번민들이 이어지고 모여져서 라는 존재를 빚어낸 것이기에 아픈 과거도, 슬픈 추억도 모두 사랑하고자 애쓰는 것이고, 그것의 증빙이 또한 이처럼 시가 되어 슬그머니 세상에 흔적을 드러내는 셈이니, 다른 누구라도 관심을 주지 않겠지만 필자 자신은 피처럼 아끼리라는 애틋함으로 은근 슬쩍 오늘의 시로 골라본다.

 

모태신앙이라는 이력을 호적에 새기고 있는 처지이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필자의 믿음은 보잘 것 없고, 기간에 비해 깊이가 일천하기 한량 없다. 애써 고백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눈 여겨 보면 누구나 필자의 어중간한 신앙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물경 50년 이상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영혼의 고백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예찬하고 감사하는 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드니, 일단은 본질적으로 신앙인 시인의 자세로는 돼먹지 못함이 분명타.

 

게다가 이따금 제목은 그럴싸하게 포장하면서 마치 약 올리듯이 조롱하듯이, 신앙을 가지고 본문 내용에서는 장난질을 쳐대니 아마도 이러다가는 제 명에 죽지도 못할 뿐 더러, 죽어서도 그 후가 순탄치 못할 조짐이 보여 사실 뒷꼭지가 켕기기는 한다. 그렇다고 이제사 긴장하여 숙달되지 않은 영혼의 고백시를 쓰자고 나대는 것도 꼴 사납고, 이래저래 근심만 깊어진다.

 

늘 천상의 목소리로 뭇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이해인수녀님이나, 존경하는 선배 시인 김석님처럼, 비단 일상 자체가 신앙이며 화평은 못되더라도, 언제 제대로 된 평화와 사랑을 한 자락이라도 실천을 해보았던가 의심되는 속인의 처지인지라 하루 하루가 갈팡질팡이요 전전긍긍이다. 그래도 마지막 남겨진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냥 지금처럼 졸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게 뻔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길들여진 패악과 위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진솔한 마음가짐으로 몇 편의 시라도 빚어내는 것이다.

 

작고하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 중에 아직도 가슴을 송곳처럼 파고 드는 한탄의 목소리 하나가 내면에서 들려난다. “너는 필경 그림자 속에 사탄을 숨기고 있어. 그래서 그렇게 교만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게야.” 허탄한 마음 되어 어머니를 추억하다가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청지기의 마음으로 종탑을 바라보며 작은 일에서부터 순종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주소서. 그리고 그런 시를 짓게 해주소서. ~!”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내용이 있다. 제목은 산등성이라는 짧은 글이다. 한 번 보자.

-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야 어찌 됐던 한 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 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쾅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에게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 마을의 한 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고 큰 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 소리 치고는 저기 저 산등성이 넘는 것을 못 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 모습, 잰 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 듯 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 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 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길을 내 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 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은 묻는다. 아버지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 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

 

일본 여행 중에 누군가가 선술집에 걸어둔 글을 읽었다. 웃기면서도 의미 심장한 글이다. ’사랑에 빠지는 18, 욕탕서 빠지는 81/ 도로를 폭주하는 18, 도로를 역주행하는 81/ 마음이 연약한 18, 다리뼈가 연약한 81/ 두근거림이 안 멈추는 18, 심장질환이 안 멈추는 81/ 사랑에 숨 막히는 18, 떡 먹다 숨 막히는 81/ 학교 점수 걱정하는 18, 혈당 당뇨 걱정하는 81/ 아무 것도 철 모르는 18,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81/ 자기를 찾겠다는 18, 모두 찾아나서는 81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고, 가지 않으면 세월이 아니며, 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이 몇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가? 근래 부쩍 '100세 시대'라고 하니 100세까지는 살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래 자료를 보면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요,축복인 것 같다고 여겨진다.

 

한국인의 연령별 생존 확률을 보니, 70세까지 생존 확률은 86%, 75세까지 생존 확률은 54%, 80세까지 생존 확률은 30%, 85세까지 생존 확률은 15%, 90세까지 생존 확률은 5%이다.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저세상에 가고, 5명만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확률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는 75~ 78세다. 그러니 아파트나 재산으로 모았던 돈은 넉넉잡아 80세까지 다 쓸 요량으로 하고, 그 다음의 일은 나 몰라라 하자. 그 나이에 아등바등하며 저축하면 무엇하겠는가?

 

그 보다는 차라리 당장 오늘부터 친구를 찾아 나서보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웃으면서 살도록 노력하자. 치아가 성하지 않더라도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오늘의 중요함을 생각하는 하루의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화평이다. 기왕이면 오늘부터의 삶이 내가 이웃에게 웃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손짓과 우스운 표정보다 내 마음 속에 흐르는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이웃의 생활 속에 즐거움이 되어 이웃의 삶의 미소가 되길 원한다.

 

또한 내가 이웃에게 믿음이었으면 좋겠다. 백 마디 맹세와 말 뿐인 다짐보다 내 가슴 속에 흐르는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이웃의 생각 속에 미더움이 되어 이웃들의 삶의 동반자가 되길 원한다. 아울러 내가 이웃에게 소망이었으면 좋겠다. 하늘에 구름같은 신기루보다 내 생활 속에 흐르는 이웃을 향한 진솔한 사랑이 이웃의 신앙 속에 닮아감이 되어 이웃의 삶의 이정표가 되길 원한다. 더불어 내가 이웃에게 행복이길 원한다. 나와 함께 웃을 수 있고 나와 함께 믿음을 키우며 나와 함께 소망을 가꾸어 우리가 서로 마주보며 살아가는 세상, 이웃들의 삶의 행복이길 원한다.

 

기쁨이 웃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웃음이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슬픔이 눈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눈물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행복이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명예가 정의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정의가 우리를 명예롭게 만든다. 재물이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건강이 우리를 부유하게 만든다. 지위가 덕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덕망이 우리를 높아지게 만든다.

 

평화가 믿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우리를 평화롭게 만든다. 새벽이 태양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새벽을 찬란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진실이다. 그런데 다들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진실이 없는 세상이라고 한탄한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베품을 미덕으로 여기며, 순간의 손해가 올지라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욕심을 부릴 줄 모르고, 비움이 곧 차오름임을 아는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덕을 베풀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일에 대한 보상과 이득을 따지지 않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용기있는 사람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남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가슴이 따뜻하고 예쁜 사람은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을 욕심 없이 바라보는 마음의 눈과, 맑은 샘물처럼 깨끗하고 아랫목처럼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우리의 이웃이 있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다.

 

가장 만나기 쉬운 것도 사람이고 가장 얻기 쉬운 것도 사람이다. 하지만 가장 잃기 쉬운 것도 사람이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대체가 되지만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잃은 사람은 다시 찾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사람답게 대하는 진실한 인간관계,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진정 소중한 것을 지킬 줄 아는 비결인 것이다.

 

사람을 얻는 일, 그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에서 사람을 잃는 일이 최악의 실수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서로 소통하며, 자주 안부인사를 나누면서 그렇게 살아가자. 처음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인연이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인연이라 한다.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노력하고 애쓰면서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야 결과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오늘도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웃을 대하면 되는 것이다. 많이 넘어지는 사람만이 쉽게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많이 넘어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축 처진 어깨로 앉아 있지 말자. 일어나자. 넘어진 자리가 끝이 아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진이며, 자신과 싸우는 것은 선이고, 자신을 이기는 것은 미다. 좋은 사람을 눈에 담으면 그 다음엔 향기가 느껴지고, 좋은 사람을 마음에 담으면 그 다음엔 온기가 느껴진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강철왕 카네기는 젊은 시절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러 다녔다. 어느 날, 한 노인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을 들어서자마자 카네기를 완전히 압도해버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집의 벽 한 가운데 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과 낡아 빠진 노가 썰물에 밀려 흰 백사장에 제멋대로 널려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 하단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카네기는 그림과 글귀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그림으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노인 댁에 찾아가 그 노인에게 부탁하기를,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그 그림을 자신에게 꼭 달라고 간곡히 청을 하였다. 그의 간절한 부탁은 받아들여져 결국 그 노인은 그 그림을 카네기에게 주었는데 카네기는 그의 사무실 한 가운데에 그 그림을 일생 동안 걸어 놓았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그림은 카네기의 일생을 좌우한 굳건한 신조가 되었던 것이다. 마음 속에 품은 뜻은 오직 자신만이 지킬 수 있고 그 뜻을 지켜 나갈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8월의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이렇게 무더운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새로움은 항상 싱그러운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남은 8월의 날들엔 멋진 기대 속에 행복한 결과가 있길 기원한다. 행복 속에 찾아올 우리 모두의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청지기의 삶으로 진솔하게 숨쉬며 매일같이 푸르른 행복과 화평을 꿈꾸는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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