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지금에 와선 그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세상으로 ‘코로나 19’라는 제목을 이마에 붙이고 지옥에서 보내온 악마의 전령이 강림하더니, 졸지에 모든 인류의 일상을 송두리 째 뒤흔들어버린 그날이 말이다. 처음엔 그래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물러날 줄 알았었다. 최첨단을 걷는다는 인류의 의학 기술을 믿고, 책임있는 사람들이 발표하는 통계나 계획을 막연하지만 그대로 맹신하면서, 먹구름이 걷힐 날만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이젠 조금 알겠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거들먹거리던 인간의 힘이 얼마나 나약하고, 그들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들이 실상은 얼마만큼 볼품 없고 보잘 것 없는 허접쓰레기들의 모듬이었는가를 말이다. 고귀한 인간의 삶을 볼모로 하여 각종 실험이나 연습을 하면서 혹여 요행으로 대비책을 마련할지도 모른다며, 이런 저런 통제와 지시를 통해 길들이기를 하는 그네들의 후안무치한 진실을,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도래하는 실패와 모순의 결과를 모두 말없이 순종하는 대중들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무책임하고 천편일률적인 행태를 말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술수와 모략으로 국민들을 조종하고 선동하면서, 소수의 권력과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몇몇 국가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까지도 엉겁결에 알아버리게 된 오늘, 필자는 하늘을 보면서 한숨짓는다. 벙어리 냉가슴이요 임금님 당나귀 귀라서 할 말 못하고, 그저 시절 탓만 하려니 치솟는 울화에 속으로 속으로만 병을 키워가는 현실이다.

그래도 필자처럼 글줄이나 쓰는 사람들은 한결 나은 편이리라. 변두리 언론일지라도 한구석 어딘가 쯤에서 화풀이라도 할 깜냥은 되니까 말이다. 바로 옆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쓰러지고 삶을 다하는 단애의 고통을 절감하면서도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를 탓할 엄두는 내지도 못하면서, 그냥 막연히 하늘만 쳐다보고 통곡을 하는 민초들의 가엾은 절규는, 정녕 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피의 역사로 기록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게다.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감춘 속내로는 자신들의 과오와 실수를 신랄하게 자아비판하고 있으리라. 예컨대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세상에서 언젠가는 밝혀질 진실과 증거를 지금 이 시간도 조작하면서, 마지막 남은 양심의 소리에 귀 막고 눈 감아야 하는 자신들의 잘못된 처사를 뼈 속 깊이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아울러 멈출 것 같지 않은 이 모든 고난도 결국은 지나가리라는 것을, 그래서 훗날, 지금의 이 암담한 현실을 회고할 광명의 그날이 필경 오고야 말리라는 것을, 허풍선같은 그들이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그닥 효율적이지도 못한 각종 대비책과 방안이랍시고 내놓는 당국의 대안에 이용당하면서도, 온갖 욕과 타박은 다 얻어먹으면서 휩쓸리다가 이제는 심각한 우울증과 팽배한 불신감에 빠져버린 억울하고 불쌍한 우리 서민들이지만, 그래도 기필코 견뎌내어 최후의 승리자가 되고야 말리라는 심장의 박동이 심연의 깊은 지저에서 움트고 있다는, 이 엄연하고도 엄숙한 진실을 외면하다가는 큰 코 다칠 거라는 것을, 빈 껍데기같은 그들이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서 아주 넘어져버릴 수는 없다. 밝아올 모든 내일들을 포기하고 그저 맥젓게 일상의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도래할 미래의 행복을 외면하고 체념하면서 이 시점에서 숨을 멈출 수는 없다. 아주 조금이지만 남아있는 사랑과 소망의 인간미를 다시금 불붙이고, 가물거리던 기다림의 기쁨을 싹자라게 하여,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맞이할 내일의 햇살을 향해 힘을 내서 나아가야 하는 거다. 아무리 극악하고 질긴 지옥의 사자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힘 모두어 손 맞잡는 오늘이라면, 종국에는 물러가고야 말 거라는 신념과 저력으로, 그렇게 앞을 향해 전진해야 하는 거다.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이며 주어진 의무일 게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보다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더 아름답다. 지금 공부를 잘 하는 사람보다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간직한 사람이 더 아름답다. 숱한 역경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꽃피우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원대한 꿈을 가졌다. 암울의 시대에 문지기를 자청했던 ‘김구 선생’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꾸었다. 젊고 나약하기만 했던 ‘간디’도 인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두 귀가 먼 절망의 늪에서도 ‘베토벤’은 위대한 교향곡을 꿈꾸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하다. 글을 잘 쓰는 작가보다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사는 사람이 더 아름답다. 꿈은 인간의 생각을 평범한 것들 위로 끌어 올려주는 날개다. 내일에 대한 꿈이 있으면 오늘의 좌절과 절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극은 꿈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없다는 데 있다. 절망과 고독이 자신을 에워쌀지라도 원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름답다. 꿈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노력을 담은 그릇이다. 그러므로 지금 비록 암담하고 비참한 현실로 인해 사면초가요 진퇴양난의 난관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하고 이룩하겠다는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아직 살 만 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은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고 한다. 아마 그것은 신이 내린 아름다운 선물일 수도 있고 가장 고통스런 형벌일 수도 있다. 죽기 전까지 계속되는 것이 기다림 밖엔 아무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권력 없는 사람이나 모두 공평히 짊어진 것이 기다림이란 과제다. 때론 짧은 기다림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긴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 모두가 자신의 일생을 마감 할 때까지, 기다림은 계속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울고 웃으면서 살아간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굶주림과 갈증에 허덕이며 괴로워하고 불행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기다림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다. ‘이어령 교수’는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슬픈 일이다.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다. 희망과 절망, 기대... 설레이는 희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답답한 환멸이 있다. 서로 모순되는 생의 기로 속에서 기다림의 꽃이 핀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살다보니 너그러움, 여유, 유유자적, 은근함, 결국 기다림의 영성, 기다림의 미학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어떤 지향을 두고 열렬히 갈구하고, 또 실제적인 삶 안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면 이제 여유를 갖고 때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말한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는데, 다른 죄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이다.”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인연들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최종적으로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이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좋은 기다림을 만나는 것이다.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안다. 하지만 논에 항상 물이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져서 작은 바람에도 잘 넘어진다. 그래서 가끔씩은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려야 벼가 튼튼해진다. 이도 기다림의 일종이다.

우리 삶의 그릇에도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채우고 또 무엇을 비웠을까? 마음에도 저울이 있다. 가끔씩 가리키는 무게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 열정이 무거워져 욕심을 가리키는지, 사랑이 무거워져 집착을 가리키는지, 자신감이 무거워져 자만을 가리키는지, 여유로움이 무거워져 게으름을 가리키는지, 자기 위안이 무거워져 변명을 가리키는지, 슬픔이 무거워져 우울을 가리키는지, 주관이 무거워져 독선을 가리키는지 말이다.

마음이 조금 무겁다고 느낄 땐 저울을 한 번 들여다 보자. 마음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세상을 살면서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인생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소풍 온 사람들이다.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해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해서 손모아 기도해야 한다. 풍요와 결실의 계절인 이 가을에, 지금 그리 넉넉하고 한가롭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걷는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샘솟는 사랑으로, 스스로의 충만함으로 희망을 가득 채우는 날들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이 되어진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