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詩作NOTE --
애당초 은둔, 고립, 격리, 소외, 압박, 정신병동, 고독, 고독, 또 고독, 다시 고독... 이런 단어들만 너저분하게 머리 속에 가득 채워놓고 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소망, 비상, 재활, 탈출, 일상, 평범, 자유, 자유, 또 자유, 다시 자유... 그런 단어들을 간절하게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던 기억도 있다. 그런 단어들만 교차시켜 쭉 늘어놓으며 시를 지었다.
단순해서 금세 고갈될 줄 알았던 소재들인데, 지루해서 곧장 그치리라 여겼던 주제들인데, 주저리주저리 한 땀 한 땀 하늘에 닿는 넉두리를 참 많이도 써제겼었다. 긴 세월 동안 혼자 만든 세상에 갇혀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닌 상태로 적어낸, 그러다가 한참 뒤 ‘고독의 묵시록’이라는 명찰 달아준 육필고백 시집에 실려있는 시이다.
모처럼 꺼내들고 혼자 음미한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멋진 시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시를 적을 수 있는 팔자 정도였다면 그나마 그 시절도 한 켠으로는 멋드러진 삶 아닌가? 정녕 그런 건가? 그렇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애초 제목부터 썰렁하고 불길하더니 시의 내용이란 게 섬뜩하고 처절하여 조마조마한 느낌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시인 걸? 옳거니! 음습하고 컴컴한 두어평 짜리 골방 속에서,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세상의 끝에 똬리를 튼, 흡사 벌레를 닮았던 꼬락서니가 보여진다,
고독함조차 사치스러운 제목이라, 진작 외면하며 혼자 뒹굴뒹굴 그냥 홀로 지새는 긴 겨울 밤이 얼마나 외롭고 적막한지 정녕 당신 아는가? 아프고 서러운 그리움마저도 차라리 축복이며 달콤한 상상이라 여겨져서 심취한 듯 골몰하다가, 탐닉하다가, 곪아가는 상처 따위나 쓰다듬으며 외로워 몸부림치는 그 밤이 얼마나 길고도 길고도 아주 긴지 당신 상상은 해봤는가?
차마 밝아오지 않는 여명을 향해 종주먹 들이대다가 되레 새 아침이 오면 어차피 뜨나마나 한 눈 결사적으로 감고 영원히 뜨지 않으리라 발악하는, 그렇게 끝내 운명 향해 설익은 몽니부리는 처절한 처지가 스스로도 한스러워, 목이 터져라 속으로 잠긴 울음 우는 차가운 마룻바닥의 감촉을 당신 상상할 수 있는가? 새벽 별 아직은 그 빛 스러지지 않아 희뿌연 누리가 낯설던 참에 푸드덕 깃치며 창문 가까이 다가서는 까마귀란 놈 하염없이 반가워 눈물 흘리면서, 혹여 떠나기 전 대답이라도 해주진 않을까 하여 급히 말 걸어대는 조바심을 당신 실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건 그저 모르는 게 좋으리라 여기자. 차라리 생각조차 안 하는 게 심사 편할 게다. 그런 하찮은 운명 따위,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처지 따위로 신세 타령이나 하는 위인이라면 아예 삶의 구석 자리에서라도 상봉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억울하다고, 너무 억울하다고 세상 향해 비탄의 피눈물 뿌리는 그런 사람 만나봐야 이로울 바 전무하거늘, 제아무리 붙잡고 애원하더라도 그냥 매몰차게 뿌리치는 게 상책이리라.
어차피 닥쳐온, 그래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였기에 그저 조금이나마 덜 아픈 채, 가능한 한 얼른 벗어날 수 있게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보이지도 않는 하늘 우러러 무릎이 다 까지도록 꿇어앉은 채 응답도 없는 기도만 줄창 반복하느니, 예컨대 길 잃은 어린 양의 신세, 영겁인 양 긴 세월 흘러도 옅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새롭게 되살아나는 통에 화들짝 놀라고 마는 새가슴, 날이 갈수록 더 선명하게 진해져 깊은 상처 헤집는 그 어느 날의 옛 기억이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찾아와주었구나. 야속한 추억이, 잊고 싶건만, 잊으면 좋겠지만, 살아 숨 쉬는 한 애당초 망각과는 거리가 먼, 그토록 살 떨리는 내 이야기들이...
나 살아가기 바쁜 세상,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유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어차피 다른 사람 숨 넘어가는 순간 보다는 내 취미 생활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게 사람들의 인심이요 인지상정인지라 아쉬울 것도, 야속할 것도 없지만 한 때는 남들의 무관심이나 방관조차도 서운하게 여겨질 때가 있었다. 조금만 더 내게 신경을 써주고 관심 가져주길 바라면서 심연의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 살 두 살 속절없이 나이를 먹어갔다. 좀처럼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어느새 쏜 살처럼 휙 지나가버리더니 하릴없이 늙어진 몸뚱이 세상 바닥에 패대기친 채, 알아서 하라고 인파 속으로 등 떠민다. 그래서인가? 고독도 푹 묵히니까 다정의 한 이름으로 익어간다는 걸 요즘은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사랑 아닌 것 없고, 가슴으로 품어안으면 행복 아닌 것 없다는 진리도 최근에 솔솔 세상과 타협하면서, 그토록 모질게 싸워오던 세상과 휴전하면서 조금씩은 터득해가고 있는 참이다.
비록 잊지 못할, 원하지 않던 어떤 기억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추억의 파노라마로만 삶의 일기장을 가득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럭저럭 간간이 남에게 들려줘도 슬며시 미소짓게 만들 정겨운 사연도 섞여있고, 더러는 각박한 인심에 한 줄기 구수한 향기로 자리매김될 미담도 마련한 바 있으니 이래저래 소담스레 빚어 반죽하다보면 모양새가 아주 흉하기만 하진 않을 터, 내 삶이란 게 어느 결에 이만큼 흘러 긴 고랑으로 얼굴에 흠집냈으나, 이제부터라도 알뜰한 줄거리 철마다 장만하며 착한 늙은 이 소리 듣는 게 새삼 세워놓은 삶의 좌우명이다.
각종 과학과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와중에 여러가지 요인의 덕을 보는 사람의 수명도 예전과는 딴 판이라 보통 사람들도 기대수명이 이제는 100세를 넘겼다는 보도도 나오는데, 내 목숨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정말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정설로 여겨지게 될까? 그렇다면 이거 큰 일 났다. 이제 인생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정작 적절한 준비나 계획도 세운 바 없으니, 이러다가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면서 대충 살아버리는 불상사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허기사 새 해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더 늦기 전에 착실한 일과표부터 작성하고, 실천해야 할 행동 수칙이나 모범적인 자세를 하나씩 배우면서 올 해의 주인공인 붉은 말처럼 달려봐야겠다. 설사 화인처럼 새겨진 지난 시절의 상처들이, 돌이킬 수 없는 어제의 기억들이 가끔 오늘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겠지만 까짓것 한껏 괴롭혀보라지! 이래봬도 다시 활기차게 살아가겠다고 작심한, 그래서 새 힘과 다짐으로 완전무장한 이 시대의 정예용사이거늘 림삼, 이 내가 못 이룰 것이 무엔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어느 가수는 노래한다. 세상사 세월의 흐름이라 늙어가는 거야 어찌할 수 없지만 기왕이면 맥없이 늙기 보다는 익어가는 편이 낫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세상 향해 한 소리 하련다. “나는 지금 늙어지면서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늙어가면서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