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의 초대시 ' 사군자(四君子) 中 난초(蘭草'

  • 등록 2022.11.23 10: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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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사람들은 가질 줄만 알지 비울 줄은 모른다



詩作NOTE -

 

90년 이상 한 평생을 동양의 묵향이 깊숙이 배어 있는 서화에 헌신해온 지촌 허룡(芝村 許龍)’ 선생은 필자가 존경하는 당대 최고의 서화가다. 선생의 그림은 동양의 대표적인 진. . 미의 요체를 거침없이 함축시킨 필력과 농담의 기맥 속에 고고하고 멋과 묵향의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애정과 향수가 농축된 고향의 정을 묘사한 서화로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선생이 평생 쌓아올린 업적이야 이루 다 헤아리기 벅찰 정도지만, 그 중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전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여러 주요 인사들에게 한글 이름의 붓글씨 족자를 선물한 것은 특히 유명한 일화다.

 

개인적 인연이 닿아 있지만 사느라 바빠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좋은 친분을 이은 덕에 연전에는 어려운 부탁을 드렸더니 좋은 글씨를 특별히 적어주심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 현판의 제자로 사용토록 선뜻 기증해주셨고, 살아 숨쉬는 듯한 커다란 화조도를 건네주셔서 집안에 걸어놓았으니 늘상 선생의 올곧은 기백을 대할 수 있어, 마치 곁에 계신 듯 하여 언제나 마음이 새롭다.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선생의 서화를 칭할 때, 마치 살아있는 듯 하다고 하는데,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도 선생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출중하고 범상치 않음이다.

 

미술평론가 김남수는 선생의 저서 전통 동양화보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지촌 허룡의 저서 전통 동양화보는 글씨와 그림을 손수 육필로 완성해 낸 역작이며, 모든 미술 지망인에게 필독의 귀중한 지침서이다. 그 서체와 회화 양식은 작가의 독창적인 경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히 높이 평가된다.” 세월이 이리 흘러 하마 선생의 기력이 예전만 못하시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실 여건은 아니지만, 노구에도 아직 도봉산 자락 호젓한 화방에서 붓을 놓지 않고 계신 선생의 무탈 강녕하심을 기원한다.

 

오늘 시의 소재인 사군자는 동양 화훼도의 한 화제(畵題)이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군자에 비교해서 그린 그림으로 문인화의 영역에 속한다.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우는 특성으로 인해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고, 난초는 담백한 색과 은은한 향기로 인해 군자의 고결함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또 국화는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워 군자의 은일 자적함에 비유되었으며,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성질 때문에 군자의 높은 품격과 강인한 기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 중 오늘 시의 제목으로 사군자의 하나인 난()은 문인화의 소재가 된 온대성 심비디움인데 그 기원을 추측해보니 10세기경에 재배된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도곡(陶穀)’이 지은 청이록(淸異錄)’()은 비록 꽃 한 송이가 피기는 하나 그 향기는 실내에 가득차서 사람을 감싸고 열흘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강남 사람들은 난()을 향조(香祖)로 삼는다.” 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것은 분명히 한 줄기에 꽃 한 송이가 피는 춘란류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송의 황정견(黃庭堅)’수죽기(脩竹記)’에서 한 줄기에 꽃 한 송이가 피고 향기가 많은 것은 난()이고, 한 줄기에 예닐곱 송이가 피면서 향기가 적은 것은 혜()이다.” 라고 한 것도 오늘날의 분류와 같다. 이 식물이 군자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덕이 청결한 군자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향초를 패용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 식물을 우리 나라 사람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여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가리키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중엽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

 

더 이상의 전문적인 고증은 필자가 다룰 분야가 아니니 이 쯤에서 중단하기로 한다. 단지, 일반적으로 다가가기 쉽지 않은 곧은 기상을 대변하는 사군자의 면모를 잠시라도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허기사 요즘 세상에서는 올곧고 휘어지지 않는 성품이나 행동은 자칫 손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 오히려 기회를 보면서 둥글둥글 세상을 살아가는 걸 마치 처세술의 기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음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주장이 강하면 색깔론이나 파벌론에 휩쌓이거나 지나친 개인주의와 독선주의라 오해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고집이 세거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일반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섣불리 사군자의 기상이나 소나무의 독야청청은 자칫 왕따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점은 가볍게 간과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각별히 조심해야 할 현대판 처신인 셈이다.

 

사실 인생에서 꿈을 추구하는 것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면 어둡고 긴 골목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이 때 얼른 골목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머뭇거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남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꿈을 가지고 확실한 청사진을 세웠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관찰하면 이들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195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연구자는 어떤 연구안을 계속 발전시키고 어떤 연구안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중한 시간을 쓸 데 없이 낭비하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성과 없이 진퇴양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아마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간 느낌일 것이다. 이 때 가장 현명한 판단은 얼른 골목에서 나와 다른 길을 선택하고, 노력하여 다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길 바깥은 위험했고,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지만, 나는 아무튼 그 길을 따라갔다. 앞에는 번개를 가진 검은 구름이 잔뜩 낀 이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으나, 나는 곧장 그리로 갔고, 그 안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밥 딜런바람만이 아는 대답중에 나오는 가사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놓여진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 끝에는 어떤 곳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후회만으로 보내기에는 너무도 짧고 아름답다.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는 한 걸음, 그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 세상은 어차피 홀로 살아가는 여정은 아니다. 남들의 생각과 판단이 나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거리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린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욕심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사람들은 가질 줄만 알지 비울 줄은 모른다. 모이면 모일수록,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무겁게 짓누른다. 삶이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놓아버려야 할 것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짓누르는 물방울을 가볍게 비워버리는 연잎처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 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욕심에 집착하면 불명예 외에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좋은 것을 담으려면 먼저 그릇을 비워야 한다. 욕심은 버려야 채워진다.

 

악기는 비어 있기 때문에 울린다. 비우면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외침을 듣게 된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진가를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栢).” ‘논어에서 나오는 가르침이다. 늘 푸른 소나무, 전나무처럼 오늘도 변치 않는, 욕심 없는 마음으로 하루를 준비하고 또 그대로 실천하는 하루가 되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어느 날 뉴턴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조수가 들어와 날계란을 책상에 올려놓고 나갔다. 마침 배가 고팠던 뉴턴은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한 손으로 계란을 집어 냄비에 넣었다. 잠시 후 조수가 돌아와서 보니 계란은 책상 위에 그대로 있고 냄비 안에는 뉴턴의 시계가 끓고 있었다. 조수는 훗날 뉴턴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선생님은 단 10분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건 엄청난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새벽 3시 전에 자는 일이 거의 없었고, 5시쯤 잠이 들어서도 보통 4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나셨습니다. 먹는 양도 매우 적었고, 먹는 걸 잊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쉬지도 않고 놀러가지도 않고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밖에 나가더라도 영감이 떠오르면 곧바로 연구실로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뉴턴은 임종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사람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그저 해변에서 노는 어린 아이와 같다. 아름다운 모래와 반짝이는 조약돌, 조개껍데기에 빠져 신나게 노는 어린 아이. 그 모래사장 앞에는 진리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바다는 지금껏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삶이 얼마만큼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삶의 모습을 어떻게 빚어가야 최선이라고, 최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군자처럼 직선의 삶을 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곡선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의 마음 속으로 판단할 때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평온함과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삶의 모습이, 겉으로 보여지는 어떤 모습 보다도 바람직한 삶의 모습일 거라는 사실이다. 이제 바야흐로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 올 겨울은 또 어떤 모습으로 진솔한 삶을 그려야 할까?

관리자 기자 news33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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