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또 꿈타령이다. 요즘 들어 유난스레 꿈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얼마 전에도 꿈을 주제로 한 제법 심각한 단상을 펼쳐보였는데, 그 잔상이 사그러들기도 전이거늘 다시 꿈을 소재로 빚어진 시 한 편을 옆구리에 은근히 끼워 넣는다. 그러고보니 시가 참 번잡스럽다. 허기사 꿈이라는 게 워낙 그렇게 혼란스럽고 앞뒤 안 맞는 줄거리로 조각조각 이어지는 파노라마이긴 하지만, 이 시는 대체 무슨 기분으로 뭘 느껴야 하는 건지를 통 모르겠다. 정작 시를 지은 필자도 헷갈린다. 토막토막 마다 다른 색깔의 피가 흐른다. 관념적인 시인가? 종교적인 시인가? 아니면 그냥저냥 굴러다니는 인간 군상 중에 하나 건졌으니, 애써 주인공 삼자고 작심하며 적어가는 뫼비우스의 일기장인가?
다만 확실한 건 시를 지을 당시는 정말 힘겨운 스스로와의 싸움질에 지쳐가던 시절이었다는 것. 어떤 근원적인 답변이나 지표는 찾아내지 못하고 단지 임시방편으로 숨 몰아쉬면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시절이었다는 것. 그렇기에 작은 소망이나 기대조차 통째로 잠식된 일상에 허덕이며 벗어나고파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는 것. 한 줄기 빛이라도 소중히 담아서 언 몸을 녹이며 내일을, 내일을, 그 내일 뒤의 내일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던, 정말 불쌍하고 처절한, 오로지 꿈 밖에는 낙이 없던, 그래서 꿈만 꿈만 줄창 꾸어대던 시절이었다는 것은 분명타.
현대인들에게 꿈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보면 꿈은 ‘잠을 자고 있는 도중에 뇌의 일부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기억이나 정보를 무작위로 자동 재생하는 것이다. 또한, 잠꼬대도 수면을 취하는 도중에 뇌의 일부가 깨어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라고 정의한다. 사실 꿈이라는 것은 수면 시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을 말한다. 다른 면으로는 희망 사항, 되고 싶은 직업, 목표 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종종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것들이며, 대부분 꿈을 꾸는 당사자가 제어하기 어렵다. 꿈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때로는 수면 중에 의식적으로 이들이 꿈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꿈에서의 상황을 임의로 바꿀 수 있기도 한다. 이를 '자각몽', 또는 '루시드 드림'이라 한다. 때로는 꿈을 꾸었을 때 일어난 일이 우연히 현실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꿈을 '예지몽'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만이 꿈을 꾼다고 알려졌으나 개나 고양이 등의 동물들도 수면 중에 종종 꿈을 꾼다고 한다.
보통은 깨어난 후 회상되는 회상몽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가 만지고 있는 꿈은 확실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막연함의 총체다. 잠 속에서만 존재하는 다른 세상의 줄거리다. 어떤 것도 가능하고 모든 것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차원의 이야기다. 그림자가 본체를 끌고 다니는 황당한 사건이 빈발하는 동화나라의 슬픈 사연이다. 그리고 누구나가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의 방 열쇠다. 자신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결론으로 빚어지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이 만드는 인연의 띠다. 그래서 꿈은 고정되지 않고 늘 변화무쌍하다.
원한다고 해서 어제 꾼 꿈을 오늘 밤 다시 이어서 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달콤하고 황홀한 향기 가득하여 진정 현실로 환원되어진다면 수준 높은 촤상의 삶이 될지도 모르는 꿈이라 해도, 그래서 그 꿈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야속한 꿈은 일회성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일장춘몽’처럼 허무하고 덧없는 내용의 용어가 전혀 낯설지 않음이다. 대체로 간절한 바람을 안고 잠 자리에 들어도 지난 밤의 꿈이 다시 꾸어질리는 없다.
그런데 예외가 분명 있다. 우리가 흔히 악몽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꿈 중에는 반복해서 잠 자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벗어나고픈 기억이며 회피하고 싶은 내용인데 줄곧 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히는 그런 꿈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런 악몽이나 흉몽은 일회성이 아니고 거듭 거듭 우리의 꿈 세계를 쥐고 흔드는 사례가 있다. 소위 가위 눌린다고 하는 육체적 충격까지 동반하여 엄청난 혼란과 공포를 유발시키는 무서운 꿈은 주변에서 똬리를 틀고 호시탐탐 우리의 영육이 고단하거나 나약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즉각 꿈 속으로 처들어온다. 그리고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매서운 공격을 해댄다. 꿈 속에서 쫓기고 도망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온 몸에 식은 땀이 흥건히 배어나오는, 소름끼치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꿈인데 이상스럽게도 그런 꿈은 또 내용이 잊혀지지 않고 비교적 선명하게 오래 간다. 정신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꿈이 세뇌를 가하는 건지, 아니면 병약한 심신을 숙주 삼아 또 다른 차원의 세상 하나를 창조하지는 속셈인지, 아무튼 그 꿈이란 놈은 요상하고 기이하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필자의 꿈에는 정말 힘이 센 대적이 존재한다. 자주 등장해서 필자와 힘을 겨룬다. 싸우고 싶지 않지만 그 놈은 언제나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한다. 어쩔 수 없으니 필자도 대거리를 할 수밖에는 없다. 아니면 그냥 맞기만 하고 일방적으로 쫓겨야 하는 거다. 물론 꿈 속에서이니 아픔이나 충격은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꿈 속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깨어난 날은 억울하고 원통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날에는 뭔지는 모르지만 승리와 성취의 느낌으로 깨어날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아침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걸 경험하기도 한다.
진짜다. 이 경험담은 지어내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적이라서 어떤 말로 표현해야 적절할지 잘 모를 지경이다. 어쨌든 필자는 남들보다 더 꿈의 세계와 현실의 연결고리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가끔은 꾸고 싶은 내용의 꿈을 꾸기도 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잠 든 밤에는 꿈 속에서 반갑게 만나기도 한다. 고향 생각이 은근한 밤에는 잠 들자마자 어느새 고향 근처에서 헤매돌기도 한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다. 되레 요즘은 꾸기 싫은 줄거리가 반복해서 꿈으로 이어져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잠 속에 꿈의 세계가 아예 없다면 잠 자체로만은 너무 삭막하고 볼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희망과 소원을 이루게 하는 마법도 펼쳐지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 모든 성공의 정점에 서서 눈 아래의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호령하는 호기도 펼쳐지며, 수백년 동안 장수하면서 불가능한 영생의 염원을 구현하는 호사도 누려보는 꿈이 있기에, 과연 오늘 밤에는 꿈 속 어디 쯤에서 무엇이 되어 있으려나? 호기심 슬그머니 모아쥐고 나만의 잠 자리로 향한다. 꿈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