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가을이 간다. 가을은 서서히 가고 있는데 성질 급한 겨울은 하마 와버렸다. 미처 인계인수를 못했는데도 와장창 몰려들었다. 마치 정벌군처럼, 폭정왕인 양 기세 등등하게 어깨 쭉 펴고 팔자걸음으로 큰 소리 지르며, 그렇게 올 겨울은 이미 우리 주위에 그득허니 들어차버렸다. 제법 춥다는 소리도 나오고, 옷깃여미며 따스한 찻집으로 종종걸음치는 이들이 늘어난다. 겨울 스케치가 일상의 화폭에 거리마다 집집마다 수놓아진다. 그래, 목하 겨울의 초입이구나. 완연한 동장군의 몸짓으로, 한 겨울인 척 유세는 미리 떨면서... 우리는 계절을 색으로 구별할 줄 안다. 봄에는 단연 연녹색이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 싹의 색깔이니까.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를 닮은 파란색을 떠올릴 수 있다. 겨울은 백설의 계절이니 단연 하얀색일테고. 그리고 가을이 되면 알록달록 휘황찬란한 색의 향연이 벌어진다. 울긋불긋한 단풍이나 노란 은행잎, 또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들판도 노란색을 띤다. 그리고 점차 진한 갈색으로 변해가며 낙엽이 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가을도 다른 계절의 색을 흉내내지는 못한다. 가을을 연녹색이나 파란색, 혹은 하얀색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자연의 색깔 하나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경계와 영역이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소유욕과 탐심을 타고 난다. 내 것은 지키면서 남의 것은 탐내려고 하는, 소위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속내를 그 본성으로 지니고 있다. 다만 그러한 본능이나 본성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서 살지 않도록 어려서부터 교육과 지침의 강한 억제를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그러면서 양심과 도덕을 배우게 되고 겸손과 양보의 미덕도 알아가게 된다. 바로 인간성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간혹 그러한 보편적이고 타당한 삶의 윤리를 무너뜨리는 인면수심의 일탈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각종 사고와 사건의 주변에는 이러한 인성파탄자나 극단적인 성격 결함의 소유자들이 대부분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일반적인 법규나 질서의 한계와 규제범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분히 독선적이고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하고 실천한다. 즉흥적이며 단순하여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저지르고 본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무시하고 본인의 고집과 욕망만을 내세우는 범죄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의 인물 중에 이런 유형의 지인이 있다거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해당자가 존재한다면 항상 불안과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예의 주시하다 보면 정상적인 일상이 심각하게 뒤틀리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법률이나 치안의 혜택을 기대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예상이나 추측만으로 누군가를 견제하거나 구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방치하고 관심을 끊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틈새에서 바로 예기치 못한 상황이 긴박하고 급격하게 진행되어버리는 것이다. 예방이나 사전 관찰 등의 소극적인 방편으로는 근절할 수도, 대처할 수도 없는 불상사를 우리는 누구나 남의 이야기라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표어를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화재사고를 심각하게 여겨서 불조심을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설마하는 생각으로 늘 무방비하고 무관심하다가 막상 사고가 터지고 나면 그제사 땅을 치고 후회하는, 어리석고 무능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라는 걸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이제 서서히 불을 더 가까이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하얀색의 영역에 빨간 화마의 색깔로 얼룩지는 과오는 단 한 순간의 방심에서 비롯된다는 절대적인 깨달음, 아울러 단단한 주의와 관찰력으로 겨울을 잘 넘겨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쓰다 보니 마치 시작노트가 불조심 각성을 촉구하는 계몽글처럼 되어버렸다.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필자 자신에게도 올 겨울을 잘 지내라는 격려 삼아 우직하게 이어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 꿈틀거리며 이불 속에 한 차례 더 파묻히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그만큼 하루들이 고단하고 버거워 삶의 구비마다 피곤과 스트레스가 옹이마냥 박힌다. 그래도 오늘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이 희망이고, 나의 귀에 들리는 것이 기쁨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연다. 사실 짧지 않은 시간들을 지나면서, 어찌 내 마음이 늘 흡족하기만 할까? 울퉁불퉁 돌 뿌리에 채이기도 하고, 거센 물살에 맥없이 휩쓸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오늘의 시간을 채워간다. 그럼에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건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긍정의 눈을 떠서 시야를 넓히고, 배려의 귀를 열어 소통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 내 이름 불러주는 당신이 있어 감사합니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해주는 당신이 있어 감사합니다. 내 곁에 당신같은 이가 있기에 감사합니다. 셀 수 없는 수 많은 사실이 있지만 이런 이유 하나 만으로도 오늘이 감사합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미소 지을 수 있고, 또 언젠가 실패했던 일에 다시 도전해볼 수도 있는 용기를 얻게 되듯이, 소중한 누군가가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며, 활기를 띠고 자신의 일을 쉽게 성취해나갈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 때 어떤 일에서든 두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듯이,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든 외로움은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을 느낄 때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 아침에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에게 미소가 되어보자. 어제보다 조금 더 겸손해져서 서로서로 대할 때 얼굴에 가득한 미소가 되고, 그 미소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그 이상이 되어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오늘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아침에 우리는 부드러움으로 하루를 열자. 목소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하여 듣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화평해지고, 그 화평한 마음들이 동료가 되고 이웃이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가 맞이하는 매일의 아침이 어느 한 날 소중하지 않은 날은 없겠지만, 내가 좀 더 겸손하고 부드러움으로 아침을 맞이하여, 만나는 이에게 미소가 되고 화평함이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행복할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는 것. 또 다른 색깔의 계절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는 것. 이것은 행복한 날들이 지나고 다른 행복의 날들이 계속해서 줄을 잇는다는 것이다. 바로 행복의 나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