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노트 - 연말연시가 되면 의례껏 회자되는 격식이나 풍습들이 있다. 흔히 세모의 풍경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정초, 즉 원단의 풍습이나 전통 문화의 현대적 구현과, 옛것 그대로 되살리자는 취지의 민속놀이에 이르기까지 그 형상은 다양하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각종 단체와 조직에서는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설계하자는 차원에서 덕담을 곁들인 촌철살인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면서 국민 모두가 그 뜻을 되새기기를 촉구하기도 한다. 소위 ‘올해의 사자성어’라는 제목으로 선정하는 한문의 교훈적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자 여러 기관이나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발표를 하곤 하는데, 어김없이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2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변동불거(變動不居)’가 뽑혔다. 이 뜻은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의미로 알려졌다. 12·3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등 1년 이상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격동의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2위는 ‘천명미상(天命靡常)’, 3위는 ‘추지약무(趨之若鶩)’가 선정됐다. ‘천명미상’은 하늘은 특정 단체나 사람을 특별히 대우하지 않고 오직 덕이 있을 때만 도와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추지약무’는 소문을 듣고 오리 떼처럼 몰려다닌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는 물론 학문 등의 영역에서 군중들의 쏠림과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벼움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10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 사자성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6년도 경영환경을 전망하는 사자성어로는 30.2%의 득표율로 ‘자강불식(自强不息)’이 선정됐다. 자강불식은 ‘스스로 강하게 하며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기업 역량을 강화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중소기업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경제 및 안보 위기 속에서 당분간 어렵겠으나, 건설 등 몇몇 산업 분야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되면 산업 활력의 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작게나마 열릴 기회를 대비해 스스로 힘을 키우고 준비하고자 한다.”는 것이 업계의 다짐이다. 한 편, 2025년 경영환경을 나타내는 사자성어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66.5%가 ‘적은 인원이나 약한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간다’는 뜻의 ‘고군분투(孤軍奮鬪)’를 뽑았다. 대외적으로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 수급비용이 증가했고, 내부적으로 국내 정치와 통상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았는데 사실 중소기업의 경영 위기는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고 누적돼 온 것이며, 가속하는 경쟁 속에서 소기업으로서 더욱 생존 위기에 봉착했다는 의견이다. 업계에서 내리는 결론은 “2025년은 고환율, 고관세, 내수 침체 등으로 ‘고군분투’한 해였지만, 2026년은 ‘자강불식’해 대내외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체 경쟁력을 높여가겠다는 중소기업인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계도 다가올 변화를 단순히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장하고 도전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보다도 언어 생활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큰 일본에서는 1995년부터 ‘올해의 한자’를 뽑고 있다. 일본 올해의 한자는 전통적으로 일반인 응모로 선정된다. “올해 1년을 상징하는 한자 한 글자를 응모해 주세요. 가는 해, 오는 해, 전하는 한 글자.” 지난달 말 주일 한국대사관 근처 도서관의 응모함에 적힌 문구다. 이렇게 모인 18만 9122개의 한자 가운데 ‘곰 웅’ 자가 2만 3346개였다. 그래서 휘호를 통해 발표한 2025년의 한자는 구마, 즉 ‘곰 웅’(熊) 자였다. 도심 진출이 더욱 활발해져 역대 최다 인명 피해(사망 13명 포함 230명)를 낸 곰이 올해 일본의 화두였음을 보여준다. ‘쌀 미’(米) 자는 180표 부족해 2위로 밀렸다. 현 ‘나루히토 일왕’ 연호를 따 ‘레이와의 쌀 소동’이라는 말까지 나온 쌀값 고공행진, 국난 수준의 위기감을 안겨준 미국의 관세 폭격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쌀 미’ 자를 써서 미국을 표기한다. 다음으로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총리’와 고물가 현상을 가리키는 ‘높을 고’(高),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엑스포)’의 ‘일만 만’(万·萬)과 ‘넓을 박’(博), 엑스포 캐릭터 ‘먀쿠먀쿠’를 나타내는 ‘줄기 맥’(脈),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을 염두에 둔 듯한 ‘여자 녀’(女) 등이 줄을 이었다. 일본이 어떤 1년을 보냈는지 얼추 되짚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올해의 사자성어로 손꼽히는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는 신문사에서 ‘추천’, ‘예비심사’, ‘전국 교수 설문조사’의 세 단계를 거쳐 선정한다. 학자들의 집단지성이 반영된 만큼 통찰력이 있고 시대정신을 꿰뚫는다는 평이다. 대신 매우 낯설다. 주역에 나온다는 ‘변동불거’, 장자에 등장한다는 ‘도량발호’를 이미 접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변동불거는 중학교용 기초한자 900자에 포함된, 비교적 쉬운 한자들로 이뤄져 있어 의미를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얼마 전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국고전 번역원장’이 “학생들이 대통령 성함에 쓰이는 ‘있을 재’(在), ‘밝을 명’(明)도 잘 모른다.”며 한자 교육 강화를 건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래서 ‘죄명’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지 않나?”라고 받아쳐 화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기초한자)1800자만 배워도, 아니 천자문만 배워도 대개의 단어가 가진 깊은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자를 익히면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 일본 국민과 소통, 교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당장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자를 멀고 어렵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문화부터 바꿔 나가는 건 어떤가?올해의 사자성어가 변동불거의 예외가 될 수는 없을 터다. 그러고보니 이번 시작노트는 선택한 시의 제목부터 일반적이지 않더니, 본문에서도 객관적인 보도를 인용하여 시국의 단면을 조명하는 데 주력하면서 조금은 낯설게 학술지같은 모양새가 되어졌다. 허기사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이니만큼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사자성어를 되짚어 생활의 반성과 기획에 덧붙이기를 해보는 것도 별로 생뚱맞은 노릇은 아니리라 여긴다. 하루 하루 아침이 밝아오는 건 새로운 기회와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며, 하루 하루 저녁이 어두워지는 건 실패와 아쉬움을 묻으라는 뜻이라 한다. 얼굴을 펴면 인상이 좋아지고, 허리를 펴면 일상이 좋아지고, 마음을 펴면 인생이 좋아지는 법이다. 요즘 쌓이는 스트레스로 얼굴을 펴기 힘든 시기인데, 당신은 지금 무엇을 펴고 있는가? 예컨대 뭐든지 펴면 좋아질 듯 하다. 얼굴도... 허리도... 마음도... 그러니 쭉쭉 펴보자. 지치고 힘들어 잔뜩 구겨진 마음, 행복이라는 다리미로 당신의 인생을 쫙~ 펴보자. 그리하여 사랑, 기쁨, 웃음으로 행복을 엮어 가보자. 바야흐로 거침없는 붉은 말의 질주가 시작되었거늘, 그 말의 기상과 호기로움에 편승한 우리들의 기운도, 염원도, 소망도 더 이상은 거칠 것이 없어라. 내일을 향한 힘찬 발걸음에 우리의 꿈과 미래를 담고 오늘도 우리의 햇살은 동녘으로 돋는다. 보아라! 지금은 새 해다. 새 날이다. 그리고 새 햇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