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作NOTE - 제목이 좀 얄궂다. 하고 많은 언어 중에 ‘수컷’이 뭔가? 대관절 스스로의 인격이나 자존심은 다 어디 팽개치고 자신을 이토록 철저하게 비하시킬 수 있는가? 남의 이야기라면 앞장 서서 쌍심지를 켤 사건인데 이것이 필자 본인의 이야기라니 선입관 접고 일단 변명이나 좀 들어보자. 그래, 남자나 남성이라는 점잖은 표현이거나 아니면 아저씨나 사장님같은 일반적인 호칭, 그도 저도 안 되겠으면 그냥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말이라도 양보할 수는 있겠다. 좋은 말 다 놔두고 하필이면 수컷이라니. 대관절 또 무슨 심사기 뒤틀려서 이렇게 어기짱을 놓는 건가? 사전에 보면 수컷을 이렇게 정의한다. ‘암수의 구별이 있는 동물에서 새끼를 배지 아니하는 쪽’. 참으로 단순하고 확실한 구분이다. 이렇다는데 어떤 말로 부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은 어엿한 동물이고, 필자는 새끼를 배지 않는 쪽이니 수컷임은 분명타. 그러면 그 수컷에 해당하는 본인은 어째서 그 사실을 강조하며 새삼 의미를 부여하려 드는 걸까? 모름지기 짐승이나 사람이나 수컷은 수컷으로서의 책무와 도리가 존재한다. 수컷이기에 마땅히 지녀야 할 의무나 업보는 수컷만이 보유하고 있는 권한이나 위용 못지 않게, 수컷을 수컷으로 만들고 돋보이게 하는 절대적인 소명이며 섭리다. 그런 의미에서 수컷만이 가질 수 있는 위치와 자긍심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수컷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컷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수많은 수컷들 사이에서 그 존재 가치와 의미를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 수컷들끼리의 서열 다툼에서 앞자리에 자리매김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수컷들을 정복하고 영도해야 한다. 수컷 무리에서 월등한 리더십과 권위 의식을 발휘하여 무릇 존경과 더불어 엄중한 복종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수컷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러한 이치와 진실은 열등한 두뇌를 가진 밀림의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진리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아울러 이는 결코 인간이라고 해서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며 고금진리의 역사다. 그런 근간을 살펴보면 수컷이라고 하는 표현이 그다지 천박하거나 격이 낮은 남자의 별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를 가리켜 단호하게 수컷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 다시 말해본다. 수컷이 어때서? 오늘 큰 마음 먹고, 엄연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록 구석자리에 머물러있는 필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쌩쌩한 꼬리 말아올린 수컷 하나가 자신을 변호하고 나섰다. 녹록한 현실 견디기 힘은 좀 들지만, 살아가기에 버거워서 간혹 눈물 흘릴 때도 있지만, 가시밭길 헤매다 넘어져 무릎 까이고 얼굴에 상처 얻어 때론 꼴불견이라 손가락질 받는 적도 있지만, 그래도 어엿하게 한 때는 군중 속에서 나름 돋보이는 위상으로 제법 큰 소리 치던, 나이 먹고 등 굽어 젊음 청춘 죄다 흘려보냈어도 못내 부끄러워 하지만은 않는, 늙은 수컷 하나 예 있어서, 수컷의 상징인 아랫도리 숨기지 않고 힘차게 길 나섰다. 아직 갈 길 먼데, 헤쳐야 할 난관 저리 많은데 이 쯤에서 멈출 수는 없다. 포기하고 좌절하면서 삿된 비명소리 드러낼 수는 없다. 비록 어제처럼 불끈 솟아오른 팔뚝 앞세워 세상 만사 쉽사리 움켜쥘 힘은 쇠했으나, 열기와 염원 지금도 이리 활활 타오르는데 세상 천지 뉘라서 이 수컷에게 낡았다고, 끝날 시간 다 돠어간다고, 무시하며 조롱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가수의 독백처럼 난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는 건데, 죽어가는 게 아니고 살아가고 있는 건데, 수컷이 지녀야 할 기백과 위상 지금도 이리 흠뻑 차올라 수컷임을 증명하고 있는데. 하루는 새벽 오전 오후 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해도 춘하추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은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원형이정이다. 기승전결이다. 씨 뿌리는 봄이 있고, 양육하는 여름이 있으며, 수확하는 가을이 있으니,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겨울이 있다. 하루 중 가장 화려한 때는 노을 질 때다. 한 해 중 가장 화려한 때는 곡식을 거두고, 열매를 거둘 때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는 60이 넘어 노인의 반열에 다다를 때다. 그런데 이 때를 놓치고 맥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냥 늙었다고 체념하며, 자기를 가꾸지 않고 내팽겨치듯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제 자리에서 맴돌며 TV나 유튜브로 소일한다. 외로움에 쌓여 있다. 늙은 티를 팍팍 내고 허약해져 있다. 우리 인생의 귀한 황금기를 이렇게 낭비할 수는 없다. 주름진 얼굴일수록 내면 깊숙한 데서 흐르는 미소와, 환한 웃음진 얼굴로 삶의 깊이와 향기를 풍겨야 한다. 여유로운 노인의 자태를 보여줘야 한다. 하물며 그 중에서도 엄연한 수컷임에야. 거울을 본다. 언뜻 보면 그 속에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털 몇 올 남지 않은, 주름살 검버섯 덕지덕지 하며 눈꺼풀 내려앉아 눈동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늙은이 하나 엉거주춤 초라하게 서있다.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들도록 무기력한 얼굴이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니 그 작아진 눈에, 앙다문 입술에, 쭈그러진 볼살에 배어있는 고집이 슬그머니 엿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새겨놓은, 그래서 섣부른 단정 짓기 어려운 어떤 기운이, 세파의 역경 쯤은 너끈히 헤쳐나가리라는 각오와 다짐이 서려있는 게 느껴진다. 맞다. 저것이 세상을 이끌고 변화시키면서 찬란한 오늘로 발전시켜온 수컷의 얼굴이다. 두 다리로 꿋꿋하게 버텨서서 내우와 외환을 모두 극복하고 이겨낸 이 시대 수컷의 자화상이다. 저 수컷은 나다. 나는 수컷이다. 어제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며 앞으로도 끝내 수컷으로, 수컷이 가진 의무와 권리를 잘 빚어서 조화의 내일을 열어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수컷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직 우리의 날들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우렁찬 함성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하루의 시작 새벽을 여는 수탉의 용맹스런 첫울음 닮은 이 포효로 세상을 깨우는 수컷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