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作NOTE - 동시일까? 동시치고는 너무 긴데. 노래 가사일까? 노래치고는 좀 은유적인데. 그럼 뭘까? 이 시의 정체는. 그냥 자유시이긴 한데 운율이 약간 느껴지기도 하고. 틀에 맞추자니 어쩐지 억지춘향이식의 정형이 어색하기만 하고. 아무튼 필자는 이 시를 적어놓고 한참동안 여러번 입 속으로 읊어보았다. 그리고는 어디에 손을 대야 하나 고민하다가 포기해버렸던 기억이다. 그저 느낌 그대로 내버려두는 편이 나중에 추억하기에도 수월하고, 통째로 들어내기도 편할 듯 하여 뒷 켠으로 밀어두었던 시인데 막상 오늘 되새김질 하다보니 새삼스럽게 정겨운 기분 솔솔 풍겨나 선뜻 시작노트의 시로 추천한다. 예컨대 중요한 건 주제다. 숨, 숨결.... 그래, 그걸 느끼고 싶었던 건가 보다. 누군가의 숨결을 그리워하면서, 그 숨결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새 희망을 싹틔우고, 그리고는 삶의 활력소로 삼고 싶은 바램, 그거였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한 모금만으로도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수같은 무엇, 그게 이 시를 통해서 적어보고자 했던 염원이며 시도였던 거다. 그래서 나름 귀히 여기고픈 욕심은 있었기에 버리지 않고 묻어두었던 작은 자산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다시금 빛을 받게 된 스토리로... 시는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읽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가 잘 읽어주어야 한다. 좋은 시라고, 아름다운 시라고, 소망을 주고 행복을 주는 향기 나는 시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는 시는 절대 나쁜 시일리가 없다. 이미 향기롭자고 작심한 터에 그 시가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꽃을 어여쁘게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세상 모든 꽃들이 아름답듯이, 이 가을의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가슴에 가득 품고 느끼는 가을 바람에서 여유와 덕망이 샘 솟듯이, 그저 읽고 버리는 시가 아니라 마음에 품자고 마음먹은 시라면 한 톨 한 톨 소중한 보석같이 여겨질 게고, 시어 하나, 문장 한 단락에도 고운 사랑이 깃들어 있는 걸 쉬 발견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다. 더불어 시인의 고충과 고뇌까지도 너끈히 헤아려주는 아량까지 곁들여지리니 그건 정녕 큰 축원이며 행운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제언한다. 오늘 이 시를 읽어주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에 행복과 사랑의 축복이 가득할 것을 믿기에,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이 시는 정말 잘 쓰여진 시라고 여겨주실 것이리라. 그리고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보실 것이리라. 이 시가 정녕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까지... 세상에 이런 억지를 부리는 시인을 본 적이 있는가? 제가 쓴 시에 대한 자부심이나 긍지는 아예 없고 독자에게 무조건 아름답게만 읽으라니, 세상 천지에 이리 염치도 없고 막무가내라니, 삼척동자도 웃어넘길 짓거리를... 국어사전에서는 ‘숨’을 ‘사람이나 동물이 코 또는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또는 그렇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 켠에서는 ‘심마니들의 은어로, 물을 이르는 말’이라는 또 하나의 주석을 달고 있다. 아마도 숨은 물처럼 귀하고 소중한 생명과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그런가 하면 ‘채소 따위의 생생하고 빳빳한 기운’을 ‘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으로 정겹고 뜻깊은 단어다. ‘숨’... 한 번 조용히 읽어보자, ‘숨!’ 목하 가을이 한창이다. 허기사 절기상으로도 이제 그 뒷자락에 접어든 셈이다. 올 가을 얼마나 좋은 숨결로 이웃에게 행복을 전파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얼마나 좋은 향기로 이웃을 웃음짓게 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가을이 다 가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좋은 삶으로 이웃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을 보였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만큼, 그 이상으로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하고, 양보와 겸손으로 하루들을 살아냈는지 가을의 거울 앞에서 회한과 책망의 일기를 쓰게 되는 아침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내 귀에 들리는 말들이 어찌 다 좋게만 들릴까? 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 다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되는 거다. 세상이 어찌 내 마음을 꼭 맞추어 줄까? 마땅찮은 일 있어도 세상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살면 되는 거다. 사노라면 다정했던 사람이 예기치 않게 멀어져갈 수도 있다. 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되는 거다.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 더러는 잘 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더불어 사는 것이 좋지만,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일일이 마음쓰고 아파하지 말자.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니, 그 또한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되는 거다. 누가 비난했다고 해도 분노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자. 오히려 내가 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러니 다 그러려니 하고 살자. 그게 세상을 잘 살아가는 또 하나의 비결이라고 할 수도 있음이다. 천년을 사는 산 속 나무를 자세히 보면 바람이 부는 쪽에는 나무 가지가 없다. 나무는 바람에 맞서면 부러진다는 걸 알고 있다. 바람부는 데로 가지를 뻗어야 오래 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평지에 튀어나온 돌은 발길로 걷어 차이게 되어 있다. 인생은 모난 돌처럼 살면 발이 아파서 주변에 친구가 없게 된다. 강 바닥의 조약돌처럼, 서로 부딪쳐도 아프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함께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함께라는 말은 참 다정하고 소중한 말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하면 행복해진다. 가까운 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함께 호흡할 수 있으면 그것은 곧 기쁨이다. 인생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어울림이다. 서로 양보하며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조화로움으로 함께 하는 행복한 날들이 되길 바래본다. 사실 사람의 마음은 두 곳에서 지배를 받고 있다. 젊게 살고 싶어도 나이가 들어 몸이 따라 주지 않을 때, 그 마음은 움츠려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높은 산에도 무서움을 모르고 올라갔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몸으로 인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육체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지배를 받고, 그 마음에 그대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무상하고 늙어짐을 슬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영혼의 지배를 받으면 된다. 이치의 무상함을 따라 사는 인생들에게 신은 영혼이라는 선물을 주어, 쓸쓸하고 슬퍼지는 인생들의 마음을 다스려 영혼에서 공급받는 힘으로, 세월의 나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힘 대신 축적된 지식과 지혜로운 연륜으로 그 역할을 다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의 삶이 잘못되었을 때 다시 뒤집어놓을 수 있는 모래시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일회 운행으로, 절대로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는, 한 번 출발하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다. 언제나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며, 웃음꽃을 피우며 태양 아래 사는 기쁨, 땅 위에 서는 기쁨, 기대며 사는 기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추는 겸손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 받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눈을 밟아 길을 만드는 하루, 좋은 음악과 따뜻한 햇살, 작은 것을 얻어도 큰 것을 얻는 기쁨을 느끼며, 일상의 소박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숨을 삶에 불어넣는 가을의 하루가 되어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