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헌법 개정 논의 등을 통해 생명권, 안전권에 대한 다양한 쟁론을 촉발시켰다. 세월호 이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재해/재난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사는 것이 국민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요 국가의 의무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재해/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자는 단순히 운이 없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국가에 대하여 안전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국민이며, 국가는 당연히 국가의 책무로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손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권과 피해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본문 중)
박종운(변호사, 전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권도 바뀌었고 여러 법과 제도 또한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얼마 전 강원도 지역 대규모 산불의 경우, 매우 위급하고 열악했던 현장 상황에 비하면 가히 모범적이라 할 만한 신속/집중 대응을 통해 조기에 산불을 진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발생했던 여러 자연 재난과 사회 재난에 대한 대응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미흡하고 부족하였다.
작년 4월경 고향 후배가 찾아와 “최근 몇 년 간 나의 가치관을 뒤흔든 일들이 있었는데….”라고 하면서 꺼낸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세월호 참사 관련 이야기였다. “다른 대형 재난과 세월호 참사는 뭐가 다른가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4년이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는 왜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잘 몰랐을까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나라’를 부르짖었는데도 우리 사회는 왜 아직까지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건가요?” 그날 필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그때부터 경험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지만, “생명존중 안전사회”로의 변화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의 발전 속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느리다는 후배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무엇이 특별한가?
이전에 발생한 재난 가운데,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발생, 사망 304명, 생존 172명)만큼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우는 없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5년 6월 29일 발생, 사망 502명, 6명 실종)처럼 희생자의 숫자로는 세월호 참사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재난도 있었고, 서해훼리호 참사(1993년 10월 10일 발생, 사망 292명, 생존 70명)처럼 유사한 해상 재난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오랜 기간 사회적 파급력을 유지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계는 물론 당시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재난은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전의 참사와 비교할 때 그 진행 양상이 매우 다르다. 필자가 보기에 세월호 참사는 ① 476명의 생명이 살아 있던 채로 세월호가 해저로 서서히 침몰해 가는 모습을 수많은 국민들이 영상 매체를 통해 지켜보았다는 점, ② 그 과정에서 승객들 대부분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 기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며 구조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국민들이 목격했다는 점, ③ 304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는데, 그 가운데 250명이 단원고 2학년 학생들, 꽃다운 청춘들이었다는 점, ④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 알고자 하는 피해자 가족, 특히 단원고 희생자 학부모들의 진상 규명 의지가 강력하고 지속적이었다는 점, ⑤ 보수적인 기득권층으로 비추어졌던 대한변호사협회가 세월호 피해자, 특히 유가족들에 대한 법률 지원을 결정함에 따라 세월호 피해자들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법률 지원을 받아가며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서 정부측에 대해 정당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는 점, ⑥ 세월호 피해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이번에야말로 대형 참사 반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안전한 선진 한국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전 국민적 열망이 강력하였다는 점 등에서 예전의 참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청사진 마련 과제
이 일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결과, 세월호 특별법 및 관련 법 제/개정이 이루어졌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6년 9월 말 세월호 특조위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사실상 강제 해산된 후에도 선체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 특조위) 등이 계속 그 임무를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아직도 침몰 원인을 포함하여 중요한 부분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3대 과제는 ① 침몰 원인, ② 구조 실패 원인, ③ 참사 이후 정부와 언론의 대응 내용 등을 들 수 있는데, 세월호 특조위는 그중 일부를 규명하다가 해산되었고,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에 대하여 ‘외력’을 포함한 2개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종결되었다. 이후 출범한 사회적참사 특조위는 기존의 수사 기관, 법원, 감사원 등에서 남겨 놓은 기록들, 세월호 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내용들을 모두 검토한 후에 본격적으로 새로운 조사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그 결과 중 하나로 2014년 6월경에 세월호 선체에서 발견되었던 CCTV 녹화 영상 저장장치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사회적참사 특조위가 위에서 언급한 3대 과제를 비롯하여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전면적으로 규명해 냄으로써 세월호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풀고 사회적으로 치유하며 많은 국민들의 심려도 해소해 줄 것을 소망한다.
또한, 사회적참사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뿐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해/재난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안전사회 건설 종합 대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세월호 특조위는 방향과 기조를 ① 산업현장의 안전 확보를 위해 ‘이윤보다 생명’, ‘비용보다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분명히 확립하는 것, ②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정책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 ③ 국가의 신속한 구조 책무를 명확히 하고 긴급 구조 체계를 만들며, ④ 재난 참사의 공정한 조사를 위한 관련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가 있다. [1]
필자는 사회적참사 특조위와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방향과 기조, 과제를 선정하여 실현해 나가고 있는지 한편으로는 기대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 없는 한 여전히 그때그때 때움질 처방에 머물지 않을지 우려도 하고 있다.
인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의 안전권과 피해자의 인권
세월호 참사는 헌법 개정 논의 등을 통해 생명권, 안전권에 대한 다양한 쟁론을 촉발시켰다. 세월호 이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재해/재난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사는 것이 국민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요 국가의 의무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재해/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자는 단순히 운이 없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국가에 대하여 안전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국민이며, 국가는 당연히 국가의 책무로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손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권과 피해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 전환과 함께 법적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도 부각되었다. 국가적 재난과 주요 사고들은 인적·물적 피해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피해자에 대한 지원 체계가 미비했고, 수습을 위한 공무원 지원 인력 동원체계도 불안정하여 큰 부담이 되었고, 피해 복구를 위한 보상의 합리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정치적 해결책을 찾다보니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래서 UN과 주요 선진국의 입법 사례를 참고하여 재난에 대한 대응과 합리적 보상 체계를 미리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취지에서 최근에는 ‘국민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 필자는 ‘별도의 기본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기존의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을 전면 개정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식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가 중요하며, 상설적인 재난 조사 기구의 설립 및 운용, 그리고 재해/재난과 관련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본다.
생명과 안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진실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한 나라의 정부와 다수 여당이 한사코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지연시켰던 사건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도 5년이나 되어버린 상황이라 그 시간만큼 증거들이 퇴색했을 수 있다. 5년 전부터 당시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고 가짜 뉴스를 양산해 낸 만큼 옥석을 구분하고 진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사회적참사 특조위는 세월호참사 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의 성과를 이어받아 시작되었고, 현재의 정부/여당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에 우호적이다. 외부적 환경이 좋은 만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런데 좋은 성과는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뜻있는 시민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날카로운 감시가 필요하다.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활동에 대해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촉구해야 한다.
또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법과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실제로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우리나라가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을 중시하는 선진사회로 다가가게 될 때, 세월호 피해자 및 그 가족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치유될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성과로 인한 혜택은 결국 살아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를 우리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한 사회가 건설될 때까지 계속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울 문제가 아니다. ‘생명과 안전’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성향을 초월한 인류 모두의 문제, 곧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거둘 때까지, 안전 취약 계층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안심할 때까지,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1] 이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 분석 및 개선 대책 마련’을 위해 다음과 같은 10대 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법령·제도 등 정비, ② 민관 유착의 관행·구조의 개혁 방안 및 기업의 책임성 강화 방안 마련, ③ 안전에 관한 규제완화 정책 및 외주화·민영화 정책에 대한 점검과 대책 마련, ‘재난 예방 및 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④ 정부 안전 정책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 ⑤ 안전 거버넌스 구축, ⑥ 4대 영역별 위험 통제 및 안전대책 마련, ⑦ 재난 경보시스템 구축, ‘재난 대응 시스템 강화’와 관련하여 ⑧ 정부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재난 대응 체계 확립, 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및 책임성 강화, ⑩ 공정하고 투명한 재난 조사 시스템 구축.
[2] 생명안전 시민넷, 「국민 생명안전기본법 제정법률안」, 제정의 목적(배경) 부분은 다음과 같이 그 취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였던 여러 재난과 주요 사고들은 직접적인 인적·물적 피해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유발하였음. 피해자들에 대한 처우와 지원에 대한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피해자들은 물론 자원봉사자와 관련 공무원 등 지원인력들도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음.”
“재난 및 주요 안전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일관적인 제도적 기준의 미비로 인하여 재난의 대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 문제점들을 정치적 해결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발생하였음. 게다가 피해자를 포함하여 재난 대응에 참여하는 주체들 간의 갈등은 물론 중앙 및 지방정부에 대한 신뢰도의 저하, 재난들 간의 형평성 논란, 지역 내의 소모적 논쟁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 유발 등 사회적 부담의 증가로 귀결되었음. 이는 재난뿐만 아니라 사고의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임.”
“재난과 주요 사고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국민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UN 규정과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인도적 관점에서의 입법례에 따라 재난 및 주요 사고에 있어 국민과 피해자의 권리와 지원에 관한 기준과 체계를 정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및 사고의 대응 수준을 제고하고자 함.”
“아울러 재난약자에 대한 대책 수립, 사고 예방을 위한 위험 정보의 제공․공개, 재난 참사 지역의 사회통합을 위한 공동체 회복과 추모, 중대안전사고에 대한 원인과 대응의 적절성의 점검과 대안의 마련을 통한 상시적인 점검체계 등의 규정을 두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사회 건설에 기여하고자 함.”
세월호 5주기 기억예배.
출처 [기독교윤리실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