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살랑이는 오늘도 난
조봇한 오솔길 따라
차박 차박 소리지르며
한 걸음씩 가고 있습니다
길 옆 쫄로리 늘어선
노랑 민들레 식구들
한 송이 두 송이
다른 이름 붙여주면서
혹여 아내가 들을지도 몰라,
그래서 벌컥 뛰어나와
반겨 맞을지도 몰라,
호기롭게 목소리 높이다가
정녕 아무 대답 없으려나
귀를 기울여봅니다
기적을 그리면서는
가슴이 콩닥 뛰기도 합니다
아내는 아주 아주 오래 전
이 길의 끝자락 쯤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날도 노랑 민들레
흐드러졌던 기억 솟아나니
문득 콧등 시큰해집니다
아내의 나라에는
아마도 노랑 민들레가
여기보다 천만 배는 많이
피어있을 겁니다
분명 온 누리 노란 빛으로 물든
그런 세상일 겁니다
이사하던 날
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는
아내의 초점 잃은 얼굴에
잠시라도 웃음 깃든 건
노랑 민들레 우우우 일어서
아내에게 노란 손 흔드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기 때문일 겁니다
내아내가
치매에 걸려든지는 하마
열다섯 해가 넘었습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그저 그냥 누워만 있구요
소리 없이 깊어진 그 병은
세월인 양 나이 먹더니
아내의 말문을 닫아걸고
귀를 막아버리며
아예 눈까지 잠가
세상에서 단절시키고는
그도 모자란지
음식 씹는 힘조차 앗아간 채로
적선하듯 어느새
숨 쉬는 법만 남겨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꿈을 꾸고 있다 합니다
잊을만 하면 잠결에 이따금
그 고운 미소를 선 보인다지요
제발,
아내가 꾸는 꿈에는
아내도 주인공으로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허기사 어차피 누구나
자신의 짐을
십자가 마냥 짊어지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삶이란 게 그렇지요,
삶의 파도는 언제나
자기 키 보다
높게 온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파도는
이끄는 게 아니고
그 위에 타야 하는 거,
세월이 할 일 없이
우리 이마에
주름을 얹지는 않을 겁니다
허면 내 주름이 깊어져
골 따라 세월 녹아들다가
어떤 날 하루
아내의 세상 한 귀퉁이
잠깐이라도
나 들어가볼 수도 있을까요?
노랑 민들레 담뿍 피어난
오솔길을 따라
아내 고운 손 잡고
서로 눈길 마주치며
빨간 노을 아래로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걸어볼 날 있을까요?
혹여
나 죽기 전 어느 날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