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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림삼의 초대시 "가을 햇살은 아무리 겹치고 겹처도.."

세상에는 여러 가지 비타민이 있다. 웃음이라는 비타민, 칭찬이라는 비타민, 격려, 배려, 인내, 용서,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유난히 짧은 계절에 왜들 그리 유난히 긴 사연들이 줄을 섰는지, 가을은 모든 이에게 사연의 계절이다. 가을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야기를 심는다. 그래서 그리움의 싹이 트고, 기다림의 줄기가 솟아,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이별의 이야기들을 주렁주렁 열매 맺게 만든다. 차마 감당하기 버거운 숱한 줄거리들이 사람들의 가여운 가슴마다, 가녀린 영혼마다, 그리고 구슬픈 육신에게로 철철 흘러넘친다.

그래서 싫다. 그렇기에 슬프다. 그러므로 필자는 가을이 밉다. 그러나, 그러나 웬지 모르게 그 가을이 좋다. 못 견디게 좋다. 그래서 가을을 사랑한다. 가을이 없으면 사는 맛이 안 난다. 가을이 안 온다면 그 대신 오기를 바랄 절기가 없다. 가을은 하마 필자의 가슴 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 가득히 들어차 있다. 그리고는 이미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열린 건 불과 며칠 전인 듯 한데, 어찌 그리 바삐 다시 닫으려 하는 건지 야속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다시 오기야 하겠지만 그 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가슴에 눈물 어린다.

가을이다, 지금은. 가을이다, 아직은. 그래서 필자의 가을 노래는 이제 절정이다. 마음껏 부르지도 못할 노래, 목청껏 뽑아올리지도 못할 가을의 시가 작은 이 가슴에서 회오리친다. 필자가 정말 시를 잘 짓는 대가라면 지금 어떤 시를 적을 겐가? 진정 시를 잘 빚는 달인이라면 이제 무슨 시를 토해낼 겐가? 고작 답답한 심사만 고백하는 필자의 소갈머리가 자못 야속타. 진작 더 시의 속맛을 알았더라면, 여태 껍질만 벗기고 있는 필자의 재주가 가소롭다. 이제 가을 끝자락이거늘, 그래서 쉬 가버리고 말 무렵이건만.

프랑스의 서정시인 ‘폴 마리 베를렌’의 시 ‘가을노래’를 생각한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 끊기지 않는 우수로 내 마음 괴롭히네 / 종소리 울릴 때 창백하고 곧 숨막혀 / 옛날들 기억나 눈물 흘리네 / 그리고 휩쓸어가는 모진 바람에 이끌려가네 / 여기저기로 낙엽처럼’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결혼까지 했던 시인은 ‘랭보’를 만나면서 격랑에 휩쓸렸다. 평생을 두 방랑시인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가슴앓이를 했다. 결국 시인은 랭보를 향해 애증을 담은 권총을 발사하여 감옥살이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시는 더러 애매하고 모호하다. 이 시도 풍랑을 만난 배가 물 위에 정처없이 떠돌 듯이 정처없는 인생의 슬픔을 노래한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로, 저리로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에 투영된 시적 화자의 목소리에는 외로움과 불길함, 깊은 슬픔이 묻어있다. 시인의 시 세계는 한 마디로 우수의 화관을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굴곡이 많았던 시인의 삶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게 탄생한 시인의 시는 많이도 아낀다. 늘 조심스레 펼쳐보고 있다.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시인 중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니...

사실은 가을은 마음을 다스리고 정화하기에 썩 어울리는 계절이다. 다른 절기에 비해 비교적낭만적이고 감상적으로 변하게 되니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기기에도 안성맞춤인 절기인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밭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흙밭이요, 또 하나는 마음밭이다. 흙밭은 우리 인간이 먹고 살아가야 할 곡식의 씨앗을 심는 밭이요, 마음밭은 영혼의 씨앗을 심는 밭을 말한다.

흙밭에는 옥토와 박토가 있고, 진흙밭과 자갈밭이 있으며, 수렁밭이 있는가 하면 부토가 섞인 푸석한 밭도 있다. 흙도 다 같은 흙이 아니라 그 토질에 따라 여러 종류와 형태가 있다. 그리고 낮과 밤을 가려 가꾸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밭의 작업은 낮이 따로 없고 밤이 따로 없다. 정해진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년 열두 달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흙밭을 갈 때는 육신의 피로가 따르지만, 마음밭을 갈 때는 정신적으로 쓰라린 아픔을 겪게 된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하며 어떤 고난이나 역경도 헤쳐나가야 한다. 그게 인간의 숙명이며 주어진 의무이다. 오늘 내 몸에 안기는 가을 바람도 내일이면 또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갈텐데, 지금 나의 머리 위에 무심히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 세상을 두둥실 떠가는 것을,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나 난관이 어찌 영원히 우리에게 머물며 우리를 힘겹게 하겠는가?

잘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텐데, 어느 날 세상을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가는 삶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그 무엇이 인생이라고 따로 말을 하겠는가? 우리네 인생도 바람과 구름과 다를 바 없는 것을, 굳이 작은 욕심에 휩쌓여 남을 해하고, 당장의 이익을 취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늘의 삶에 애면글면하지 말고 넓고 길게, 그리고 크고 깊게 볼 일이다.

독일 민요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 길이는 모른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몇 살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이 값을 하며 올바르게 살고, 곱게 늙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문제는 나이 값이다. ‘고희(古稀)’로 불리는 70이 넘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추하게 늙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실은 소망과 다르다.

쉰이 넘고 예순이 지나 일흔이 되면서 더 외로워지고,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에 독일의 문호 ‘괴테’는 노인의 삶을 네 개의 ‘상실’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면서, ‘건강, 일, 친구, 꿈’을 가지고 기품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유난히 나에게 시비를 많이 건다면 그 시비를 유발하는 요인을 내가 제공한 것이요, 나를 찾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하고, 자식이 나를 돌보지 않으면 결국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은 내 거울이니 그를 통해서 나를 보도록 하자. 가난한 사람을 보거든 나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고, 부자를 보거든 베풀어야 그와 같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가진 사람을 보고 질투하지 말고, 없는 사람을 보고 비웃지 말자. 오늘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이니, 좋은 씨앗 뿌리지 않고 어찌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면 그게 바로 천당이고 행복이다. 천당과 지옥은 바로 내 마음 속에 있음을 명심하자.

세상에는 여러 가지 비타민이 있다. 웃음이라는 비타민, 칭찬이라는 비타민, 격려, 배려, 인내, 용서, 사랑이라는 비타민, 당신은 그것을 얼마나 먹고 있는가?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비타민은 바로 행복이라는 종합비타민이다.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가가 궁금한가?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라고 해보자. 어느 자리, 어느 상황에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행복하다고 말해보자. 결국은 행복으로 극복되고,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로 행복해진다. 이 가을 주문인 양 행복을 읊으면 필경 가을의 축복인 행복은 당신 속으로 스며들어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마법처럼, 혹은 요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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