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

림삼의 초대 詩 '사랑. 시, 느낌, 강물-"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 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림삼 /칼럼니스트.작가

- 詩作NOTE -

역시 어려운 시다. 정작 시를 지은 필자가 보기에도 결코 만만치 않은, 예컨대 형이상학적인 주제와 소재를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한 형이상학적인 시다. 그래서 이런 시는 독자가 별로 없다. 도무지 읽고 이해하기 난해하며 머리만 아프게 만드는 이런 시를 읽어서 어느 짝에 쓰겠다는 건가? 한 마디로 우스운 노릇이다. 뭔가 있기는 있는데 그 뭔가가 도저히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형상이니, 그렇지 않아도 복잡다단한 인연들로 살기 버거운 세상에 두통거리만 하나 더 얹어 놓는 셈이다. 그저 헛헛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게 되는 심상이다.

지인 중에 비교적 필자의 시에 관하여 쓴소리를 자주 하는 기자가 한 명 있다. 그도 절대 쉬운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닌데, 정작 필자의 시 앞에서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수시로, 시를 좀 쉽게 쓰면 안 되겠느냐고 넌지시 제안을 하곤 한다. 그 때마다 필자는 웃음으로 받으며 늘상 같은 대답을 한다. 어려우면 읽지 말라고... 오늘도 지난 시절의 시들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이 시를 골라들었다. 제목을 비교적 쉽게 짓는 필자의 버릇과는 조금 다른 출발이 심상치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음에 스스로 낚였나보다.

그렇다. 제법 멋드러진 제목의 시다. 과거 쉽지 않은 시절을 살아내면서 마음 깊은 곳의 시심을 기억하다가, 잊지 않겠다는 다짐 얹어 적었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한 육필시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필자의 방황과 방랑은 끝 닿은 데 없이 높고도 길었음이다. 도저히 답을 찾아내기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줄창 의문부호를 그려대던 오래 묵은 습관이 사뭇 가슴 저려와 먹먹해진다. 공식도 없는 일상의 탑을 쌓으면서 필자는 옛날 무던히도 많은 눈물을 쏟아냈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 눈물은 샘 되어 솟는다.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삶에 연륜도 쌓였고, 경험치도 제법 모았으니 사는 모양새가 조금 안정 궤도에 들어섰어야 하는 게 마땅하거늘, 어찌 하루같이 헤매기만 하면서 갈짓자 걸음으로 비틀거리는 건지, 야속하기도 하고 남사스럽기도 한 필자의 삶이 제법 구차하다. 그래도 어쩌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이 아침에도 세상 사는 지혜 하나 더 배우기 위해서 책도 뒤적이고, 컴퓨터도 켰다 껐다 하면서 제법 시간을 활용하고 있는 정성이라도 갸륵하지 아니한가? 스스로 위로 삼아 햇살을 호흡하고 있다.

두 명의 보부상이 산을 넘고 있었다. 한 명은 젊은 청년이고, 또 한 명은 주름살이 제법 있는 중년 남자였다. 한 여름의 뜨거운 날씨와 땡볕에 판매할 물건이 가득 담긴 커다란 짐을 메고 산을 넘는다는 것이 두 사람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젊은 청년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 이런 날에 왜 꼭 이 산을 넘어가는 겁니까? 아직 반도 못 왔는데 이러다가 날이 어두워지겠어요. 남들도 힘들어 안 가는 저 마을에 왜 이렇게 힘들게 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청년의 투덜거림을 듣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이렇게 길이 험하니 다른 장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 마을을 다니지 않았을 거라네. 그러면 이 산 너머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을 거라네. 어쩌면 오늘 이 물건들을 몽땅 다 팔아치울지도 모르고.” 중년 남자의 말에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청년은 곧 힘차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진정한 삶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목전의 괴로움에 힘겨워한다. 그러면 발걸음 하나하나가 고통일 뿐이다. 결국, 포기하고 멈춰 서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당장 힘든 그 발걸음에 집착하지 않고 그 여정 끝에 분명히 있는 목표와 기쁨을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그 힘든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져 오히려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은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부단한 노력으로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점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금해야 하는 행동이 아니다. 벤치마킹이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원래는 토목공학에서 측량할 때 쓰는 기준점인 ‘벤치마크(Bench Mark)’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업의 경영 철학에서 적용하는 용어다. 무언가의 나쁜 점을 보고 그것을 하지 말자는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와 의미는 통하지만, 무언가의 좋은 점을 본받고 따라 하자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는 2등의 전략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벤치마킹 사례로 ‘제록스’가 자주 인용된다. 복사기 하면 제록스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1961년 ‘제로그라피 복사기’의 시판 성공 이후 줄곧 독점적 경쟁우위를 지켜왔다. 1970년대 전 세계 복사기 시장의 90% 이상을 독식했지만, 시장이 다양화되고 다른 후발 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시장점유율이 40%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사 제품의 제조원가가 경쟁사 제품의 판매가와 비슷한 데서 자극을 받게 되어 혁신적인 벤치마킹을 도입하는데 그 대상은 바로 일본의 ‘캐논’이었다.

디자인, 가격정책, 원가관리, 생산관리, 품질관리, 판매 등 모든 것을 벤치마킹하고 그것을 회사의 경영과정에 적용, 개선해 나간 결과 품질 수준을 높였고, 결함 수를 낮추었으며 생산원가를 50% 절감하고, 개발기간을 66% 단축하는 등 엄청난 경영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 제록스 사(社)는 1986년 미국 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고 또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적 재산권이나 특허권이 강해진 지금은 기업 간의 벤치마킹이 예전보다는 어렵고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조심할 필요가 없는 벤치마킹도 있다. 그것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품과 노력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사람들이 행하는 일을 지속해서 행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당신이 성공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어차피 세상은 많은 사람들의 교류와 순환사이클이 반복되면서 발전되어가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공공연히 떠돌던, 역사상 최고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천재 ‘니콜로 파가니니’. 그는 연주할 때 엄지손가락을 손등 위로 구부려 새끼손가락과 맞닿게 할 정도로 손가락이 매우 유연했다고 한다. 그 손가락 덕분에 다른 연주자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복잡한 기교의 연주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앨러스 단로스 증후군(Ehlers Danlos syndrome)’ 또는 ‘마르판 증후군(Marfan Syndrome)’이라는 유전병을 그가 앓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두 증후군 모두 관절이 비정상적으로 잘 휘어지고 유연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가 활동했던 당시에는 그런 유전병조차 확인할 수 없던 시절이라서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온갖 증상에 시달리며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말년의 모습은 앨러스 단로스 증후군 증상과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그는 평생 자신의 병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수많은 질병과 싸웠고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위대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었기에, 그의 인생에 찬사를 보낸다.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이 부서졌지만 그 고통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 칼로’. 피아니스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손가락이 세균 감염으로 마비되었지만, 손가락이 없어도

작곡은 할 수 있다고 예술혼을 불태운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음악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각장애를 딛고 뛰어난 걸작을 세상에 남긴 불멸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역경을 딛고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고 존경받는다. 그렇기에 역경 속에서도 계속 의욕을 가져야 한다. 최선의 결과는 곤경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패션쇼’ 런웨이에 바지만 입은 남성 모델의 당당한 워킹이 눈길을 끌었다. 운동으로 단련된 대흉근과 단단한 복근, 군살 없는 몸매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그 모델이 흰 머리와 흰 수염을 휘날리는 80세 노인이었기에 그 감탄은 더욱 컸다. 이날 화제에 오른 할아버지 ‘왕 데순(王德順)’ 씨는 많은 역경을 겪은 사람이었다. 14살에 돈을 벌기 위해 전차 운전사로 일했지만, 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연극배우를 20대에 시작하고, 40대에 영어공부를 시작하며 마임극단을 설립하지만, 50대에 베이징으로 옮겨간 그의 손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이후 운동을 하루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57세 때엔 세계 유일의 ‘살아있는 조각 공연’을 창안해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79세가 되던 해 드디어 그 자신이 베이징에서 런웨이에 올라 첫 워킹을 선보였다.

상의를 벗고 30년 가까이 정성을 쏟아 만든 근육질 몸매를 과시한 그의 워킹은 대성공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게 되었다. 아직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는 말한다. “자신이 늙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도전할 수 있느냐고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패션쇼 인터뷰에서 왕 데순 씨가 한 말이다. “이날을 위해 저는 꼬박 60년을 준비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 그것의 인생 드라마다. 그러니 진정 바라는 것이 있다면, 꿈이 있다면 간절하게 매달리고 노력해보자. 그 노력 끝에 어떤 보물이 잠들어있는지 모르기에 어떤 나이에도 도전할 수 있다. 어떤 노력도 늦지 않다.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 패배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불운이라 부른다.” 라고 한 ‘로알 아문센’의 말을 기억한다.

3,00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마을에서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장례식에 1,5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 중 두 명 중 한 명은 장례식을 찾아와 할머니의 삶을 존경하고 돌아가신 것을 슬퍼한 것이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저명한 명사이거나 지역 정치인이거나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초등학교의 평범한 교사였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자들의 상점에서 구매하며 살아왔다. 근처에 크고, 편하고, 값싼 대형 점포가 있었지만 조금은 멀고 조금은 비싸도, 제자들이 운영하는 옷가게, 잡화점, 식료품점을 일부러 들러 물건을 사며, 성장한 제자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유명 브랜드의 물건보다는 제자의 손길이 닿은 소박한 물건을 더 아끼고, 이미 졸업한 제자들에게도 끊이지 않는 관심과 사랑을 베푼 할머니를 수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세상에 남긴 것이 다시 모여 있는 것이다. 평생 사랑을 세상에 남긴 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그 사랑이 다시 돌아와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로 하여금 헛되이 살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소망이다. 커다란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지만, 작고 사소한 일상의 이룸과 성취가 곧 창대한 최종 목표의 첩경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가 나무 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 다음에는 그 나뭇가지는 한동안 흔들리며 날아간 새를 기억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와 같이 저마다 지나간 자리에는 남기고 간 흔적들이 남게 된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남기고, 봄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열매가 맺기 시작하고, 가을이 지나간 자리에는 알차고 풍성한 열매가 남게 된다. 또 역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인물과 유적이 남아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위인으로 남고, 부정한 일을 한 사람은 악인으로 남게 되듯이, 이렇듯 인간이 지나간 자리에도 분명한 자취가 남게 마련이다.

당신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떤 흔적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려 하는가? 모든 자취의 흔적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기록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서 때로는 자랑스런 모습으로, 때로는 역겨운 모습으로 남게 된다. 위대한 작곡가는 오선지에 아름다운 명곡을 남기고, 철학가는 인생의 의미를 남기고, 성인은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또 위대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남기고, 훌륭한 부모는 자녀들을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인류에 든든한 대들보로 길러낼 때, 그들은 죽어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이 된다.

우리는 잠시 왔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모름지기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는 과연 어떤 자취를 남겨 왔고, 어떤 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어떤 자취를 남길 것인가를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이 고찰해 보자. 내가 가지고 떠날 것은 많은 재산도 아니요, 빈 손도 아니요, 이승에서 내가 지은 죄와 복의 단 두 가지만 가지고 떠나나니, 많은 재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거룩하고 훌륭한 흔적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아름다운 인간이 되자.

마음의 등불 중에서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많은 흔적들이 남아서 비추어질까? 이렇게 작은 공간이지만 하나 둘 쌓아놓은 글로 서로를 알리고, 마음을 열고 받고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그리워해보고, 누군가를 위해 작은 마음을 열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고, 이렇게 하면서 진정한 나의 자리를 만드는 것 아닐까? 외로웠던 기억을 말하면 “내가 곁에 있을께.” 하고 말해주는 사람, 이별을 말하면 이슬 고인 눈으로 보아주는 사람, 희망을 말하면 꿈에 젖어 함께 행복해 하는 사람, 험한 세상에 구비마다 지쳐가는 삶이지만 때로 차 한 잔의 여유 속에 서러움을 나누어 마실 수 있는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굳이 인연의 줄을 당겨 묶지 않아도, 관계의 틀을 짜 넣지 않아도, 찻잔이 식어갈 무렵 따스한 인생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이러한 자리가 우리의 소중한 자리가 아닐까 싶어진다.

좁다란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동안 후진을 하다가 마주보며 웃었다. 정원 초과로 승강기가 몇 차례 그냥 통과한다. 겨우 한두 사람 태울 정도로 승강기가 다시 올라왔다. 앞 줄에 서있던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려다 그만 또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뒤에 기다리는 사람 모두 가슴이 흐뭇해졌다. 길거리 좌판에 광주리를 든 할머니와 젊은 새댁이 실랑이를 한다. “덤으로 주는 거니까 이거 더 가져가슈.” “할머니, 괜찮아요. 제가 조금 덜 먹으면 되니까 놔두고 파세요.” 지나가던 행인들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번진다.

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꽃을 받쳐주고 있는 푸른 잎이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 별이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건 하늘이 어둠을 마다하지 않고 까맣게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이처럼 비우고 낮아질 때 가까이 다가오며, 고요하고 아름답게 번져간다. 크고 엄청난 보상이나 댓가가 주어져야 그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아주 작고 소소한 대화와 나눔에서 잔잔하게 싹트는 따뜻한 감정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기본이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자.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말자.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 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말자.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말자.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내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말자. 내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걷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세상의 모든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에겐 어느 지점까지 해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게 있는 것처럼, 너무 무리하고 과하게 하다 보면 도리어 일을 망치는 경우가 생긴다. 조금은 느슨하게, 그리고 조금은 여유 속에 일을 한다면 정말 최상으로 이룰 수 있지 않나 싶다. 뭐든지 부족하다 싶을 만큼이 최고이고 만족하는 성과가 아닐까 싶어진다.

욕심을 더 부리다 보면 도리어 화가 되어 아름답던 것도 미움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지금의 현재가 아름답게 비추어 질 때 진정으로 빛나는 것이 아닐까? 찬 바람이 매섭게 옷깃을 올리게 하는 시간들, 나 보다 더 많이 추워하는 이웃을 생각하는 그런 12월 하순의 하루가 되길 바래본다. 사랑, 시, 느낌, 강물의 진솔한 의미들을 하나씩 곱씹으면서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이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하루가 되어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의정

더보기
음주의회 이제는 그만 엘로카드 제시 [today news] 강진군의회는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제298회 임시회를 열었다. 2023회계연도 결산검사 위원으로는 유경숙, 김창주 의원, 전 강진군 공무원 5명을 포함, 7명의 위원이 선임됐다. 또한 이날 본회의 직후 상임위원회를 열어 강진군통합재정안정화 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등 9건의 각종 안건을 심사했다. 이러한 중요한 일부개정조례안과 9건의 각종안건을 심사한 중요한 임시회였다. 의장과 한두의원을 배제시키고 어울어진 자리인지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오전회기를 마치자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 기관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반주까지 거나하게 마시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오후 회기를 참석하는 기막힌 의원들의 작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업무의 일환으로 식사와 반주를 대접한 담당 공무원들은 떳떳한가를 묻고 있다. 의원들도 사람인지라 함깨 먹을 수 있고 공무원과 함께할 수 있다 그러나 회기 동안 공무원과 의원 신분인 공인 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붉은 얼굴의 취한 의원들을 쉽게 의회 본 회의장에서 확인할수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거기에 참석한 공직자들을 무시한 처사요 더 나아가 의회로 보내준 군민들게 의원들의 책무와 책임 도덕성을 망각한

LIFE

더보기
최대집 후보, 목포 선거사무소 개소식 성황, “태블릿 특검으로 윤석열 조기퇴진 시키겠다” “당선 즉시 윤석열의 ‘최순실 태블릿’ 조작수사 문제에 대한 특검으로 정권교체 이룰 것” “호남불가론, 영남후보론에 실종된 호남대권후보 양성하는 데도 일익담당할 것” “목포를 중앙정치 복귀시켜 의료천국 목포, 신목포시 출범 등 지역공약 이행” 소나무당(‘송영길 신당’) 최대집 목포시 국회의원 후보가 23일 오후 2시, 전라남도 목포시 옥암동에 소재한 본인의 선거사무소에서 개소식을 열었다. 이날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노영희·변희재‧손혜원·권윤지·김도현·마화용 등 소나무당 비례후보들과 주요 당직자들이 총출동하고 내외빈 수백 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개회선언, 국민의례, 내빈소개 순으로 진행됐으며 나영진 전 목포MBC 초대 노조위원장에 이어 변희재·노영희·손혜원 등 소나무당 비례대표 후보들이 차례로 축사를 했다. 이날 최 후보는 출마선언을 겸한 환영사를 통해 헌법 제46조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를 인용, “이번 선거는 지차제 선거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일꾼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인 만큼 평생 나라를 위해 싸워온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최 후보는 “2017년부터 윤석열 검사의 증거조작 범죄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