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물론 시인은 언어로 온갖 천태만상을 표현하고 모든 감정을 대신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지만, 없는 말을 만들어내거나 억지로 독자들을 개인적인 심상의 세계로 끌어당길 권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섣불리 시를 빙자하여 섭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 엄중함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는 필자는 먼저 세월에 사죄의 의사를 표한다. 목하 겨울이 여물고 이젠 저물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새 계절이 푸르른 옷을 차려입고 잔설과 한풍을 훠이~ 쫓아낼 거다.
그래서 조심스레 겨울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조금 더 머무르고 싶긴 하겠지만 오는 봄을 어찌 말리랴. 할 수 없이 기세를 접으며 뒷전으로 밀려나야 하는 팔자, 그저 사람이나 계절이나 세월 흘러 할 일 다 했으면, 그렇게 늙어졌으면 이제 다음 생명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그 영역을 접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바야흐로 또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듯 조심스레 걸음 떼는 새 계절 봄이 왔음이라, 오호라! 봄이로구나, 봄, 봄. 온 천지에 봄 기운이 만연하는 느낌이다.
아울러 늙은 계절 겨울은 늙었으니 늙음이라 불리는 게 억울할 것 없겠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그리 부르는 필자는 겨울 보기 민망하고 영 조심스럽다. 그래서 사과의 변을 이리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올 겨울도 참 지루하고 길었다. 별 일도 많았고, 원치 않는 국내외의 사건 사고도 차고 넘쳤다. 사연이 주저리주저리 길게도 많게도 이어지며 역사를 써내려가는 모양새에, 유난스럽게도 인간이란 굴레를 타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여겨지기까지 할 지경이다.
어쩌면 이토록 변화무쌍한 기록들이 매일같이 쉼 없이 쓰여지고 있는지 도무지 정신 차리기가 쉽질 않다. 우리처럼 나이 먹은 부류들은 그냥 조용히 안정적으로 늙어가고 싶은데 도저히 선불맞은 도깨비처럼 야단법석인 인류는 한시라도 잠잠할 날이 없으니 제 명대로 살기가 영 용이하지 않은 세상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무와 권리들을 착실하게 소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되고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조금은 절제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가지면 참 좋으련만, 도대체가 스스로 먼저 솔선수범하는 참사람의 미덕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기가 어렵다. 통탄할 일이다.
이제 봄은 다시금 우리 곁을 찾아주는데, 그래서 묵은 때를 씻고 거듭나는 산하에 축복의 빛을 내려주기 시작하는데, 더불어 인간들에게도 축복을 주고 싶어 저리 안달을 하는데, 어떻게 생겨먹은 양심들이 주는 복조차 받을 마음이 없는가보다. 아직도 그 무거운 겨울의 옷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더욱 싸매려고 드니, 대관절 언제 쯤이면 상큼하고 신선한 빛의 축복을 누리며 새 생명 더불어 계절의 향연을 만끽할 날이 되려는가, 정말 진실로 사랑 고픈 아침이다.
그러고보니 사실 우리네 인생에는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행복의 가치는 슬픔 속에서 알았고, 기쁨의 가치는 불행 속에서 배웠다. 웃음의 가치는 눈물 속에서 배웠고, 사랑의 가치는 이별 속에서 알았다. 젊음의 가치는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으며, 깨우치는 것이 도리라고 하면, 그걸 빨리 알고 행한 것이 지혜롭다 하겠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온다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내일은 간 데 없고 오늘만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내일의 희망이고, 내일은 오늘이 발판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겨울에는 씨앗을 뿌리지 말아야 한다. 싹이 트지 않기 때문이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주변 환경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본인의 계획을 추진하기에만 급급하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도 않은 채 자신의 정당성만을 과감하게 교육하려 든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머리에서 나온 논리를 가슴이라는 토지에 억지로 심으려고 고집만 부린다.
왜 상대가 변하지 않는지, 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짜증만 일삼고 살아간다. 참으로 어리석기만 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땅을 먼저 녹인 후에 씨앗을 심으면 되는데 말이다. 이는 ‘행복을 만드는 55가지 습관’ 중에 나오는 글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로 짓게 되는 네 가지 업이 있다고 한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 남에게 퍼붓는 욕지거리, 남을 이간시키는 서로 다른 말, 겉과 속이 다른 발림말이다. 생각해보면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진실한 말은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에서 우러난다. 세상에 양식이 되는 말, 세상에 쓰임이 되는 말, 세상에 거름이 되는 말, 세상에 빛이 되는 말, 세상에 소금이 되는 말이 그러한 부류이다. 자신이 뿌린 말의 열매를 모두 스스로가 거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람은 말을 경작하는 농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좋은 말의 씨앗을 많이 뿌려 풍요로운 인생을 경작해야겠다.
오늘 주어진 것을 놓치면 내일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자주 쓰는 라틴어 중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 옮기면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주어진 오늘 하루 하루를 ‘카르페 디엠 데이’로 삼아 감사하게 충실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최선의 삶이다. 똑같은 재료라도 누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전혀 다르다.시간요리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하루 24시간도 자신이 어떻게 버무리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짭짤하게! 알차게! 즐겁게! 그렇게 정성을 다 해 요리하자. 그러면 현재를 사는 인생 맛이 어제와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우리 마음에 행복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칭찬 받아 마땅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올바르고 좋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당연히 우리의 삶은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을 디자인한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모든 일의 이유는 우리 자신이 만든다.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가 이 우주의 하나하나의 고유한 안테나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주파수를 우주로 보낸다. 그렇게 보내버린 주파수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만든다. 즉,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우리가 만들어 낸 일이다. 그렇다면 운명은 자신이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좋음, 행복, 기쁨 등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면 우주는 바로 응답하여 좋은 일을 일어나도록 하며, 행운을 만들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센 주파수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하면 행복해진다. 겨울이 늙어 사라지는 그 자리에 사랑의 힘을 듬뿍 담은 새 계절 봄이 태어난다. 봄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 껏 나누어주고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엄청난 사랑을 담고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서는 거다. 기왕지사 살아내야 하는 이 봄, 우리의 운명처럼 찾아준 이 봄에 우리는 무조건 사랑을 해야 한다. 무작정 사랑부터 하고 봐야 한다. 그래서 사랑의 맛이 어떤지, 사랑의 느낌은 무엇인지 몸으로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도 봄이 성에 차지 않으면, 사랑이 반갑지 않으면, 그 때 가서 마땅찮은 봄을 버리면 된다. 그 때까지는 그저 못 이기는 체 하고 봄에 걸맞는 사랑을 삶의 지표로 삼자. 그렇게 살아보자, 일단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