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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림삼초대시 '바람 부는 날이라면 용서를 하자'

이웃과 교류하면서 대인관계를 넓혀가는 우리들이 된다면, 세상 근심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詩作NOTE -

 

용서(容恕)’라는 단어는 명사다. 그리고 용서하다는 동사다. 그 뜻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다. 이는 사전에 수록된 내용이다. 참 간단하고 쉽다. 말대로라면 누구나 아주 마음 편하게 해줄 수 있고, 아무데서나 흔히 이루어질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용서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볍게 간주할 수 있어야 마땅한 것이 바로 용서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필자는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괜시리 눈치를 보게 되고, 하늘을 슬쩍 곁눈질하며 고개를 흔들게 된다.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그건 정말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정작 행위는커녕 생각 자체도 감히 떠올려서는 안 될 크고 엄중한 문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서 감히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용서할 권리는 사실 누구에게도 없다. 그건 성직자나 법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매개체나 과정을 거쳐 편의상 표면화된 규정을 전달하거나 대행하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죄를 물어 용서하거나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라고 규정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더 큰 죄악이다.

 

그건 하늘의 섭리를 역행하는 것이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나아가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원천적인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는 패악이라고 까지 단정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심히 조심스럽고 망설이게 되는 상상이 바로 용서라는 단어인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쩐지 좀 무겁고 끈적한 주제로 시작노트가 시작된 양 싶다. 어쩌면 용서라는 단어는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영어 표기로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용서(forgiveness)’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표현이다. 상대방의 허물이나 과실을 눈감아 주거나 혹은 그 책임을 면제해 주던지,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죄인들의 허물과 죄를 용납하고 없애는 것뿐 아니라 그 용서의 대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의로운 상태로 만드는 것까지를 포함한,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용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사랑이다.

 

그리고 죄인들에 대한 용서의 근거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구약의 모든 피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함)에 기초한다. 죄인들은 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로써 반응할 때 하나님은 그 어떤 죄악과 허물도 용서해 주신다. 한 편, 용서의 은혜를 받은 자는 마땅히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불쌍히 여기며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견해로 살펴보면, 용서는 언어적으로 단념(Verzichten)’과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할 수도 있다. ‘헤겔은 이 용서의 개념을 정신현상학에서, 아름다운 영혼을 논할 때에 도덕성을 다루는 형태로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는 자기에게로 복귀한 자기의식은 스스로의 직접적 개별성을 순수의지 및 행위로서, 또한 참된 현실 및 조화로서 안다. 이것이 양심의 자기이다. 자기는 자기를 양심으로 삼음으로써 타인과 동일한 자기가 된다.

 

그리고 이 경우, 개별적 의식과 보편적 의식이 대립하고, 후자의 보편적 의식을 전자의 개별적 의식의 폐기된 계기로 하는 경우, 헤겔은 그것을 이라고 부른다. 보편적 의식이 악이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악에게도 자신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고, 악도 자립하여 서로 자립적으로 된다. 이러한 자립성의 측면을 극복할 때 스스로의 비현실적 본질을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의 용서는 종교적인 사태가 아니라 도덕성의 사태를 말하고 있다.

 

, 여기서는 선악의 추상적 구별을 동일한 것으로 정립하는 것, 즉 상대의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에서 용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용서는 더 나아가 화해(Versöhnung)’와 관련하여 종교 현장에서 비극을 논할 때 망각(레테)’과 관련지어지고 있다. 헤겔은 대립의 상호 화해는 죽음에서의 지하계의 레테이든가 지상계의 레테이든가이다.”라고 말한다. 이 경우의 용서는 죄책에서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범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서 속죄와 관계지어지는 것은 계시종교에서이지만, 거기서는 용서라는 말보다는 화해라는 말이 사용된다.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용서라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깊은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더 생각하면 할수록 이 단어는 어쩌면 결코 쉽사리 입에 담아서도, 머리에 떠올려서도 안 될, 모든 사람의 영원한 금기일지도 모를 일이라는 두려움에 빠져들게 된다.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 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이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대개 자신이 타인들에게 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해도 남들이 나에게 입힌 상처는 오래 간다. 상처의 깊이가 클 경우에는 원한이나 미움, 증오, 복수심 등과 같은 이름으로 상흔이 남아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기도 한다.

 

용서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종교에서 그렇게 용서를 강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한 태도로 좀처럼 스며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용서는, 심지어 내가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로는 다 용서했다고 해놓고도 문득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고 있을 때, 상처받은 기억 때문에 아파하고 분노할 때, 우리는 용서라는 감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용서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타인이 나에게 한 잘못을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숭고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서를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 혹은 모두를 위해 용서가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분노, 원한, 증오 등과 같은 것들보다 용서로 이룰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크고 위대하다. 은식기를 가져간 장발장에 대한 신부의 용서는 그 어떤 단죄보다 크고 위대한 결과를 가져왔음을 기억해보자.

 

원한을 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상을 입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라고 부처는 말했다. 부정적 감정을 품고 있으면 결국 다치고 피해를 입는 쪽은 자신이다. 용서는 잘못을 한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라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으로 자신이 먼저 치유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서 용서받아야 할 사람, 용서받아야 할 과오를 놓아줌으로써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킬 수 있다. 용서는 잘못을 잊어버리는 망각이 아니며, 타인에게 베푸는 자선도 아니다. 타인의 잘못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정신적 날갯짓이다. 집착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지고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선지자들이 말하는 용서가 주는 구원임을 기억하자.

 

사람이 살고 죽는 건 사실 백지 한 장 차이다. 아등바등하면서 조금 더 오래 살려고, 조금 더 편히 살려고 하는 욕심 자체는 어쩌면 덧없고 실없는 짓거리인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향기가 넘쳐나는 세상이 된다면 참 좋겠다. 그렇게 나보다는 남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이웃과 교류하면서 대인관계를 넓혀가는 우리들이 된다면, 세상 근심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1862년 미국 남북 전쟁때 북군의 중대장 엘리콤은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숲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기에 가보니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나이 어린 남군병사가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중이었다. 비록 남북이 전쟁 중이었지만 이 북군 중대장은 남군 병사를 정성을 다하여 치료를 하였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죽은 후에 랜턴을 밝히고 병사의 얼굴을 닦고서 자세히 보니 바로 자기의 아들이었다.

 

음악도였던 아들은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남군에 입대한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죽은 아들의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는데 그 종이엔 하나의 악보가 쓰여 있었다. 중대장은 자기의 상관에게 자식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 달라며 군악대의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적군의 장례에 군악대까지 지원할 수는 없다면서 상관은 단 한 명의 군악병 연주만 허락하였다.

 

중대장은 단 한 명의 군악병 나팔수를 선택해 아들이 쓴 악보를 주면서 나팔을 불게 하였다. 숙연하게 장례를 치른 후 이 악보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진혼곡 뿐 아니라 자장가로 남북군을 가리지 않고 매일 밤마다 연주되었다. 이 곡이 바로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유명한, 단 한 명이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진혼곡이며, 현재 군에서 취침나팔로 사용하는 곡이다.

 

죽은 아들이 가슴으로 담아 쓴 곡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곡을 듣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모든 전쟁과 분란이 다 용서되고 평화의 전령사로 자리매김된 이 곡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다. 단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그를 감화시키는데, 하물며 고귀한 생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 당신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작품일까? 당신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작품, 비교할 수 없는 작품, 흉내도 낼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걸작품이다. 자신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보자. 분명 당신은 걸작품이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이 이 부족하다는 부분을 만든 이유를 아는가?

 

완전한 걸작품으로 만들어가며 달라지는 자신을 보면서 기뻐하고 놀라고 감탄하라고 부족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자신감을 만들어가자. 자신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1%, 혹은 0.1% 씩이라도 달라지고 변화를 시켜 작품을 걸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세상을 구하고 모든 삼라만상을 용서할 자격을 지니고 있는 고귀한 존재다.

 

어느 날 가정주부가 삶을 비관하며 기도했다. “신이시여!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현실을 견디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 때 갑자기 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살기 힘들지? 소원대로 천국에 데려다 줄테니, 그 전에 몇 가지 내 말대로 하거라. 네가 죽은 후 마지막 정리를 잘 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 청소를 해라.”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다.

 

3일 후, 신이 다시 와서 말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낄 수 있게,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주어라.”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애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다시 3일 후 신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말이 나오게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줘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 그녀는 3일 동안 최대한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이제 천국에 갈 날이 된 부인이 자신의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니, 깨끗하고, 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신에게 물었다. “신이시여! 갑자기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신이 말했다. “네가 만든 것이다. 진정한 천국은 바로 살아있는 이 순간이다!” 진정한 천국은 살면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내 등의 짐은 세상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등에 놓인 짐에 대해 늘 불평만 한다. 그 짐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강하게 만들며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보물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역경은 꼭 우리가 극복할 수 있을 만큼만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 그늘 속에서 힘겨워 하지만 그건 분명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모두 힘을 내자. 등에 놓인 짐을 달리 보면, 그건 바로 희망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미친 듯 사랑하며 살다가 그 사랑이 시들면 우정으로 살고, 그것마저도 시들해지면 연민으로 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사랑처럼 좋은 것도 없지만 한 떨기 꽃과 같아서 피었다가 이내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 사랑보다는 우정이 힘이 강하다고는 해도, 우정의 잎새 무성하여 오래 갈듯 해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는 매한 가지다. 꽃 피고 잎새 무성할 땐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이 그제야 삐죽 고개를 내미는데 그 가지들의 이름이 바로 연민이 아닌가 싶다.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잎새처럼 무성하지 않아도, 나뭇가지들은 변하지 않고 자라나는 거다. 바람에 흔들리기는 해도 쉽게 꺾이지는 않는 거다. 인생이 한 그루 꽃나무라면, 그래서 무수히 꽃 피고 잎 지며 사계절을 견디는 거라면,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오래 가는 것이 연민이 아닌가 싶다. 사랑이 가고 나면 적막해지고 우정마저 사라지면 한없이 삭막해 지겠지만 그래도 연민의 나뭇가지 사이로 달도 뜨고, 별들도 새록새록 반짝이므로 우리 인생이 그런대로 살만한 것 아닌가?

 

커피처럼 들꽃처럼 향기로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때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혹은 남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 지으며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살아가면서 하루 하루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조금은 모자라도 욕심 없이, 아무 욕심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속에서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마음 속에서 언제나 아름다운 언어가 흘러나오고,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가진 것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어느날, ‘다윗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폐하.”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들고 멋진 반지를 만들었다.

 

반지를 만든 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계속 생각했지만 좀처럼 다윗이 말한 두가지 의미를 지닌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해도 적절한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서 다윗의 아들 지혜의 왕 솔로몬을 찾아갔다. “왕자시여, 다윗왕께서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하시는데 어떤 글귀를 적으면 좋겠나이까?” 솔로몬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지혜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유태인들이 항상 즐겨 읽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붙잡고 유태인들은 나치 학살의 그 어려운 시기에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대는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너무 괴롭고 슬퍼서 하루도 살기 힘든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답고 예쁜 젊음이 영원할 것 같은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은 언제나 돌고 돈다. 항상 잘 되던 사람도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고,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로워도 반드시 자기가 꿈꾼 행복한 날이 언젠가 올 수 있다. 긍정의 힘으로 항상 감사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자. 애초에 오늘의 화두는 단연 용서였다. 그리고 오늘의 결론은 오직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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