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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림삼초대 詩' '충무로 비들기'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다.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詩作NOTE -

 

겨울이 저물어가는 계절의 변환점에 서있다. 어느새 민족 고유의 최대명절인 설이 목전이다. 그러나 유난히도 초라하고 볼품없는 명절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마당인지라, 새삼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조차 나누기가 뻘쭘해지는 설명절이 다가왔다. 실상 설이란 용어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루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옛 기록들에 의하면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정(元正)’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대개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명절을 맞았다. 설이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있다. 다만, 이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는데 삼간다는 뜻으로서, 새 해의 첫날에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달라는 바람에서 연유했다는 견해와, ‘섦다의 뜻에서 유래된 뜻으로, 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 하는 뜻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한 설다, 낯설다의 의미로 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그리하여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생겼다는 견해,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서다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 마지막으로 설이라는 말이 17세기 문헌에 나이, 를 뜻하는 말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설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에 3일씩 공휴일로 삼았으나, 오히려 ‘2중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공휴일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귀향 인파가 늘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을 설명절이라고도 하거니와 설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설을 설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다. 그 중에서 설날보름명절을 크게 여겼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 날로서 중요하며, 보름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다. 농경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다. 보름명절 가운데서도 정월 보름‘8월 보름 추석은 또한 각별하다. 정월 보름은 첫 보름이라는 점에서 보다 중시되어 대보름명절이라고 한다. 8월 보름명절은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국가에서 여름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시기로 수확을 앞둔 명절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설날을 비롯하여 각 세시명절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성격을 지닌다. 기원의 대상은 신()과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세시풍속은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세시풍속이 풍농의 기원과 예측, 풍흉을 점치는 점세(占歲), 농공과 풍농을 감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어업과도 관련을 갖게 된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사가 약화되어 농경의례로서의 성격도 희박해졌다. 명절을 전후하여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정월, 설명절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 기간에 세시풍속이 집중되어 있는 까닭은 정월이 농한기인데다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기간에는 신과의 만남이 수월해져 인간의 기원 사항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신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를 한다. 설날은 섣달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 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나면서 동시에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설날에는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복을 끌어 들인다는 복조리 풍속도 속신으로 볼 수 있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서 일정한 방향 없이 돌아다니다가 방향에 관계 없이 소리를 들어본다. 이때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조이고, 까마귀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한다.

 

설날 밤에는 야광귀라는 귀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신발을 신어 보고 맞으면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 해에 재수가 없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이런 세시를 행하고 또는 열엿새를 귀신날이라 하여 이날 밤에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놓는다.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체나 키를 지붕에 매달아놓거나 혹은 저녁에 고추씨와 목화씨를 태워 독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우리의 최대 명절이니 만큼 얽혀있는 사연이나 풍속도 다양하고 연결지어 생각해볼 것도 무궁무진하니, 설이라는 주제로 주워섬길 자료만으로도 한도 끝도 없을 지경이다. 이렇듯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우리의 귀하고도 흥겨운 명절이건만 올 해는 다른 어느 해와 견줄 수 없이 한숨과 근심으로 보내야 할 처지인지라, 삭막하고 각박한 터수에 하늘 우러러 탄식을 흘릴 뿐이다. 언제 끝이 나게 될지 모르는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에 문득,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현실이 아무 의미나 희망이 없이 겨울을 나고 있는 비둘기 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일단 모든 건 다 인정한다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지금 처해있는 이 현실이 어둡고 암담하다고 해도 그냥 맥없이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내일이라는 시간이 다시 주어지기 마련이고, 그 내일은 필경 벅찬 소망과 밝은 빛을 담고 우리를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의 고통이 진하면 진할수록 내일의 빛은 더 한층 밝게 빛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좌절이나 포기로 오늘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어렵게 준비하는 내일이라는 시간은 정녕 가치롭고 의미 있는 귀한 희망의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다. 가서 보니까, 천사들이 뭘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사람들에게 줄 축복(祝福)’을 포장하고 있다고 한다. 복이 사람들에게까지 잘 전해지도록 포장을 해서 보내는 것인데, 복을 포장하는 포장지는 고난(苦難)’이라고 한다. 고난은 단단해서 내용물이 파손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으니까 포장용으로는 제격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천사가 하는 말이, “그런데 사람들이 고난이라는 껍데기만 보고는 그 안에 복이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어이쿠 무섭다하면서 받지 않고 피해 버리거나, 받아놓고서도 껍질을 벗기고 그 안에 들어있는 복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고, 고난만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것이다. 포장지를 어떻게 벗기는 거냐고 물으니까, 고난이라는 포장지를 벗기고 복을 꺼내는 열쇠는 감사라고 한다.

 

고난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받으면, 그 껍질이 벗겨지고 그 속에 들어있는 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난으로 포장된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을 해서 껍질이 더 단단해지는 바람에 그 안에 있는 복이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감사하고 살 것인지, 불평하고 살 것인지 말이다. , 과연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칡넝쿨을 거두려고 붙들었는데, 그것이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나무꾼은 깜짝 놀라 나무 위로 올라갔다. 화가 난 호랑이는 나무를 마구 흔들었다. 나무꾼은 놀라서 그만 손을 놓아 나무에서 추락했는데, 떨어진 곳이 호랑이 등이었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놀라 몸을 흔들었고,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호랑이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고 있었다. 그런데 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에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 한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하면서 사는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면서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는가?” 농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을 부러워했다. 때로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남들은 호랑이 등을 타고 신선놀음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사람 사는 것이 거의 비슷하다.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똑같은 외로움 속에 몸부림친다. 남과 비교하면 다 내 것이 작아 보인다. 나에게만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들어가 보면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비교해서 불행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올 해의 설날을 맞이하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감사의 싹이 자라난다면 참 좋겠다.





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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