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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림삼의 초대詩 "새벽산"

서로의 관심에서 얻어질 6월의 사랑을 전하며, 오늘도 새벽 산에서 전해주는 사랑의 이름으로 초여름의 하루를 연다.



림삼 / 칼럼니스트 . 시인


- 詩作note -

6월 ‘호국의 달’이 열렸다. 이른바 초여름의 초입이다. 그런데 지금 기온은 한 여름을 방불케 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폭염과 지역별 호우가 예상된다는 기상 예보도 있으니, 이래저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점이다. 이제 또 얼마나 더위에 시달리며 긴 여름을 견뎌야 할까? 벌써부터 긴장되고, 생각만 해도 짜증이 슬며시 우러난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살아내야 하는 여름 한 철이고, 기왕 살아야 할 거라면 찡그리고 투덜대기보다는 오히려 가슴 활짝 열고 여름을 누리며, 시원하게 살아내는 게 어쩌면 요령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든 시간은 간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 추위도 이미 너끈하게 물리쳤던 기억이 있고, 더위도 이미 지난 해에 정복해 본 경험이 있으니, 그 생각을 곱씹으며 하루씩 정복해가면 될 일이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여름 새벽이 유난히 신선하고 상큼하게 여겨지는 이즈막이다. 맞다. 세상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리를 위해서 찾아온 이 여름을 반기며 한껏 즐기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거늘, 어찌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를 인상 찌푸리게 할 것이며, 길고 지루한 기억만 선사하겠는가? 둥글둥글 호박같은 세상인데.

사실 필자는 ‘열 체질’이라서 겨울을 지내기는 좀 수월하지만, 남들에 비해 여름을 더 힘겨워하는 편이다. 여름만 되면 에어컨이나 선풍기, 빙수, 얼음 등의 차가운 이웃들을 달고 살아야 그럭저럭 견디곤 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겨울에는 이 나이에도 새벽 산 등산을 즐기고, 냉수마찰을 할 정도로 조금은 생뚱맞기까지 한다. 아무튼 세상은 일방적이지 않고 공평한 규칙을 갖고 있는지라, 사람들도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진리다. 그러니 여름, 겨울을 다 수월하게 보내는 체질은 없다. 그냥 인내하며 적응하면서 살아갈 따름이다.

‘보편적 타당함’이라는 용어가 있다. 소수의 특별한 의견이나 주장보다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공명정대한 결론에 더 근접한다는 생각에 기인한 용어다. 아무리 현명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다수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교적 판단과 선택이 애매한 경우에는 소수의 생각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고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오래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서 ‘지미의 세계’라는 충격적인 기사를 발표했는데, 지미라는 흑인 어린이가 부모로부터 날마다 마약을 투여 당하는 비참한 삶을 전했다. 그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쓴 ‘자네트 쿠크(Janet Cooke)’라는 여기자는 그 흑인 아이의 고통을 너무도 생생하게 전달하였고, 많은 사람의 공분과 동정과 안타까움을 자아내었다. 큰 반향을 얻은 이 기사로 인해 자네트 쿠크는 ‘퓰리처상’을 받기에 이른다.

‘어린이 마약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기사로 사람들은 지미를 부모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며 자네트 쿠크에게 소재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녀는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들어 거부했다. 결국, 포스트 지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도록 조사하게 되었고 조사 결과, 그 기사가 모두 꾸며낸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자네트 쿠크는 자신의 직속 상관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특종으로 일약 스타가 되는 것을 보고, 본인도 공명심이 생겨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녀는 퓰리처상을 반납하고 엄청난 오명을 쓰고 망신을 당해야 했다. 참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0억 원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범죄라도 저지를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충격적인 결과는 어린 학생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자네트 쿠크처럼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계속해서 내보인 결과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바르게 얻은 것만이 오래 취할 수 있는 열매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바른 길로 가야 한다. 해로운 생각은 다른 생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거짓은 진실로 맞서 싸워야 한다. 언제나 시간이 흐르면 드러나게 되어있는 게 진실과 거짓이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에게 혼돈을 부추겨서 흑막을 잠시 가로막을 순 있지만,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을 가릴 수는 없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한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대박이 났다. 여기저기서 구매요청이 끊이지 않아 사장까지 작업복을 입고 밤낮없이 공장을 돌렸지만, 도저히 요청물량을 맞출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결국, 함께 제품을 생산해줄 협력업체를 찾아야 했고, 너무 바빴던 사장은 작업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협력업체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처음 찾아간 협력업체는 정문 통과조차 못 했다. 지저분한 작업복 차림의 사장을 수상하게 생각하여 아예 들여보내 주지도 않은 것이다.

두 번째 찾아간 협력업체에서는 건물 안까지는 들어갔지만 옷차림을 본 직원이,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말하면서, 다음에 다시 오라며 내보냈다. 그런데 세 번째 찾아간 업체에서는 경비원은 물론 담당 직원도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사장을 맞이했다. 그렇게 찾아간 협력업체의 사장실은 매우 검소했고, 업체의 사장 역시 친절하고 진지한 태도로 이쪽의 협력요청사항을 살폈다. 결국, 세 번째 업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예상보다 더욱 많은 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고, 두 회사는 이후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값진 보석은 흙탕물 속에 빠져 있어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흙탕물 속에 빠진 보석을 건지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고, 더러운 물에 손을 담글 수도 있어야 한다. 겉 모습만으로는 그 가치를 몰라볼 수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면을 살필 수 있어야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자. 그러면 성공이라는 부상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게 되어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진리가 있으니, 언제나 보여지는 겉 모습에 집착하거나 치중하지 말고 내면의 가치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 다는 것이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저와 결혼해 주신다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겠습니다.” 한 낭만적인 젊은이가 여인에게 열렬히 청혼했다. 여인은 그 청년이 얼마나 성실하고 끈기가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하늘의 별을 따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 강변의 자갈 중에 별 모양으로 생긴 돌을 하나 찾아와 주세요.” 젊은이는 그날부터 강변에서 별 모양의 돌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살펴본 돌을 다시 찾아보지 않도록, 한 번 확인한 돌은 강에 던져 넣는 일을 며칠 동안 수천 번이나 계속하게 되었다.

젊은이는 매일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돌을 찾았다. 돌을 찾는 손 끝은 결국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수없이 돌을 집어 던진 어깨는 무척 아팠지만 젊은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젊은이는 드디어 별 모양의 돌을 발견했다. “드디어 찾았다!” 젊은이는 크게 소리치며 너무도 기뻐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했던 습관처럼 반복했던 행동으로 돌을 강으로 던지고 말았다. 젊은이는 낙담했지만, 여인은 그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젊은이에게 감동한 여인은 젊은이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은 간혹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만들기도 한다. 청년은 생각지도 못한 습관 때문에 사랑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청년의 사랑을 구한 것도 결국은 청년의 습관 덕분이다.

청년처럼 자기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올바른 습관은, 분명 어디에선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일시적인 처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습관처럼 몸에 밴 행동과, 그 실천을 하게 하는 생각이 결국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만드는 것이고, 드러나는 겉 모습까지 좌우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따뜻한 이웃의 이야기가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현이’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족으로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아현이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가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현이의 기억 속에는 늘 침대에 누워 있는 아픈 엄마였지만, 그래도 아현이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엄마와 함께라면 언제나 따뜻했고 든든했다. 그런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아현이는, 더는 자기 편이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낯선 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뜻밖에도 할머니가 찾아왔다. 그렇게 할머니는 어느날 아현이의 새 가족이 되어주었다. 아현이는 지금도 문득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가 보고 싶지만, 자기보다 더 슬퍼하고 속상해할 할머니를 위해 엄마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는 속 깊은 아이가 되었다. 할머니는 지금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몸이 몹시 아프시다.

오늘도 할머니 다리를 주무르는 아현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할머니는 엄마처럼 세상에 나만 남겨두고 그렇게 떠나지 않을 거죠?” 사실 할머니는 처음엔 아현이를 맡지 않으려고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더는 일을 할 수 없어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웠고, 재혼한 지금의 할아버지에게 본인의 손녀를 키우자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용직 일을 하는 할아버지 형편에 손녀까지 맡기엔 부담이 컸다.

그래서 아현이를 시설에 맡기려는 나쁜 마음을 먹었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현이 엄마가 생전에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잘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왜 나는 지금도 내 생각만 하는지. 미안해, 이런 부탁까지 엄마한테 하게 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아현이를 엄마가 맡아줘. 예쁘고, 밝게 키워줘, 미안해 엄마...”

임신의 기쁨도 잠시, 남편에게 무참히 버림받은 불쌍한 딸... 아현이가 돌 때부터 신장 투석을 하며 늘 병상에 누워 있던 딸... 그런 소중한 딸은 마지막 순간에도 손을 잡으며 아현이 걱정밖에 없었다. 딸의 모습이 떠올라 할머니는 손녀를 시설로 보낼 수 없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도, 어렵지만 함께 키워보자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아현이를 키운 지 5년이 되었다. 철이 일찍 들었는지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 아현이는 말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제가 효도할 수 있도록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그리고 나중에 커서 맛있는 음식도, 멋진 옷도 사드리고, 할머니 아픈 것도 치료해 드리고 싶다고 한다.

할머니는 기특한 아현이를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만 할아버지의 수입으로는 세 식구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형편이다. 반지하 집은 곰팡이와 습기로 가득해 건강을 위협하고 있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곳에서 공부하다 보니 아현이의 시력도 나빠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핏줄이 아님에도 친손녀처럼 사랑으로 양육한다. 할머니가 아현이를 데리고 오는 걸 망설일 때도 내 손녀처럼, 우리가 힘을 다해 한 번 키워보자고 말한 것도 지금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타지에서 일용직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한 달에 며칠 정도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할아버지지만 손녀 아현이의 환한 미소를 보면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사라진다고 한다. 가슴으로 낳은 손녀에게 늘 미안하다는 할아버지... 더 좋은 음식을 못 사줘서, 남들처럼 공부를 많이 못 가르쳐서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한다. 좋은 환경에서 아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또한 할머니가 좀 더 오랫동안 아현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치료비도 필요한 상황이다. 세상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는 아현이네 가족에게 따뜻한 봄날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다.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은 한 살 더해지지만, 나이든 사람은 한 살 줄어든다. 입장에 따라 진리가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되찾을 수 없는 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한다. 인간의 탐욕에는 끝이 없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

행복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가진 것 만큼 행복한 것이 아니며, 가난은 결코 미덕이 아니지만 ‘맑은 가난’을 내세우는 것은 탐욕을 멀리하기 위해서다. 가진 것이 적든 많든 덕을 닦으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잘 살아야 한다. 돈은 혼자 오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를 데려오며, 재산은 인연으로 맡은 것이니 결코 내 것이 아니므로 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생길 돌고 돌다 보면 항상 제 자리에 서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려도 왜 항상 이 자리 뿐일까 생각도 하지만, 지금의 이 자리 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데도 늘 우리는 더 좋고 높은 자리를 탐내곤 한다. 높아 보일수록 더 행복하고, 잘 살고, 위대하게 느껴져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 위보다 낮은 자리가 더 많이 값진 행복을 가져다 줄 때가 많은데도 말이다. 세월 속에 살아온 인생길이 조금은 험하고 어렵다 해도, 사랑과 존중이란 단어 속에 묻혀질 수 있는 그런 인생길이었으면 좋겠다.

시작된 6월의 어느 하루가, 그리고 여름 머금은 일주일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조금 부족하면 어떻고, 아직 이루지 못했으면 어떤가? 지금부터, 오늘부터란 생각 속에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남은 시간들이 더 없이 값지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슴 속에 넣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잊혀질 수 없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해준 사람이다.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사람이다.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다. 자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이다. 한 편, 다른 사람들은 오늘도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슴에 새기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지를...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스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대해주자.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지 말자.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베풀기로 작정하자. 나를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만 선대하는 일에 머물지 말자. 나를 잘 대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선대하자. 훗날 그들은 당신의 호의와 사랑을 기억해낼 것이다. 당신을 가슴에 꼭 새기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새겨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남자.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향기나는 꽃처럼 여겨지는 사람으로 남자.

길가에 뒹구는 작은 물건에서도 떠오르고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옛 추억만큼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또는 또렷하게 기억되는 이들인 줄 알지만, 그러면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손 한 번 내밀면 비어 있던 옆자리는 채워질 것을, 자존심에 이기심에 늘 옆 자리를 비워두게 되는 것 같다. 담겨지는 만큼 베풀 수 있는 그런 시간들 속에 앞으로는 좀더 그 기억들을 꺼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픈 상처를 받았다면 보듬어 치료하고, 용서라는 마음을 주고, 미처 전하지 못한 상처라도 믿음으로 다가서면 더 깊은 마음을 받지 않을까?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남은 시간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하기만을 기원해 본다. 시작되는 사랑은 아주 작은 관심이다. 가령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부름에 여기에 있다고 대답해주는 일이다. 사랑은 사소하고 그 작은 일을 통하여 내가 그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니 말이다.

그 사소함이 무시되거나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보여지지 않으면, 이내 그 사랑은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어리석은 습성이 있다. 사랑은 수용되고 있다는 모습이 서로에게 보여져야 한다. 그 수용의 모습은 받아들임이나, 이해의 모습으로 결국 표출되어진다. 사랑이 수용되어지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서로에게 상처의 모습으로, 그리고 오해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다가온다. 그 누군가에게 오해와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 아주 사소한 배려를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랑은 그런 아주 작고도 사소한 것이다. 이 계절은 그런 사소함을 무시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하는 것 같다. 6월의 하루들, 퍼지는 햇살, 한 모금 한 모금에 신명이 난다. 당신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사랑의 촉촉함이 가슴을 적시기 때문이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할 당신의 사랑이 내 가슴에 쏟아져 들어온다. 이 아침,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당신과 함께 마실 모닝커피는 더욱 상쾌할 것이다. 서로의 관심에서 얻어질 6월의 사랑을 전하며, 오늘도 새벽 산에서 전해주는 사랑의 이름으로 초여름의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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