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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림삼초대시 '수묵화로 비는 내리고'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림삼/칼럼니스트. 작가

검은베레특전용사 출신


- 詩作NOTE -

가을을 떠나보내려는 몸부림인지 어제는 하루종일 가을비가 추적였다. 차창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동행하던 지인이 말했다. “가을비는 웬지 을씨년스러워.” 포도에 떨어져 쌓이는 가로수잎들과 은행나무잎들이 그냥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차라리 조금은 서글픈 느낌의 풍경이 이어지는 한낮이었다. 아직은 엉성한 채로 더러의 잎들을 매달고 버티는 저 가로수들이 불과 며칠 뒤에는 바람에 굴복하여 벌거벗게 되겠지. 그리고는 아주 가을을 떠나보내겠지.

봄비가 뜻모를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정겨운 손님이라면, 여름비가 정열과 활력을 상징하는 용솟음의 파발마라면, 가을비는 익히 알 듯이 추억과 쓸쓸함의 대명사다. 분명 저 비는 우리에게 이별과 설움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어쩌면 고독과 그리움의 화신이라는 본분을 드러내면서, 종일을 실팍하게 마음으로까지 내리퍼부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비는 수묵화다. 담채색으로 아롱지는 거리와 산야에서는 지금까지 조신하게 쌓아온 이야기들이 기억의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우리를 손짓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을 예감한다.

짧디 짧은 가을이 이내 가버리기 전 나름 소복한 사연 하나 쯤은 얼른 장만해야겠다는 조바심으로 우산을 펼쳐들고 나선 거리에서, 반갑고 정겨운 느낌을 비처럼 맞으며 필자는 어제를 그리 보냈다. 다시 오지 않을 올 가을을 절절히 추억하면서... 그리고 만난 지인들과 정담을 따스하게 나누며, 점심으로 뜨끈한 국물을 곁들이면서 따스하고 뜨끈한 삶의 관계를 되새기는 하루를 보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가을비를 바라보면서 가을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가을을 사는 우리의 존재 가치가, 오는 겨울을 살아갈 우리의 존재 이유가, 사람이기에 더욱 사람다워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제법 심도있게 파헤치며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곤 인류 평화에 이르는 방대한 식견을 자랑하며 열변을 토했다. 가을의 식당은 우리 말고도 목소리 크고 똑똑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렇지만 모두들 무에 그리 바쁜지 총총 사라지고, 제일 늦게까지 남아 열변을 토하는 논객들은 우리 뿐이었다. 우리는 승자가 된 기분으로 느즈막히 식당문을 열고 퇴장했다. 가을이 그렇게 익어갔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수목한계선’에는 무릎 꿇은 나무라는 특이한 형태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해발 3,000~3,500m 지점인 이곳은 바람이 매섭고, 눈보라가 심하며 강우량이 적다. 이런 거친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나무는 성장을 억제하고, 자신의 몸을 비틀고 웅크려 마치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으로 삐뚤어져 버린다. 키가 작고 뚱뚱하고 모양도 뒤틀린 이 나무를, 가구를 만드는 목공소에서도 반기지 않는다. 심지어 꽃이나 잎도 제대로 피우지 못해 초식동물들조차 거들떠보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천대받는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휘어지고 뒤틀려 볼품없는 나무. 바로 이 나무가 전 세계에서 가장 공명이 잘 된다는 명품 바이올린의 소재로 사용된다. 로키산맥 자락에서 초라하게 자라고 있는 무릎 꿇은 나무가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많은 사람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앞에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실감한다.

흙이 흔하다고 해서 가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흙을 잘 고르고, 잘 빚고, 잘 구우면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남기도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모두 존재가치가 있다. 하찮고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안에 감춰진 무한한 가치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하늘은 아무런 행운도 없는 자를 태어나게 하지는 아니하며, 땅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를 길러내지는 않는 것이다. 가을을 보내며 첫 번째 화두로 삼고싶은 게 바로 이것이다. ‘존재의 이유’.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는 높이 48m, 너비 900m에 이르는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천둥소리’라는 의미를 가진 이 폭포는 말 그대로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굉음과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주변의 절경을 배경으로 한 무지개로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아름다운 명소 중 하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매력 중 으뜸은 폭포 위에 걸려 있는 ‘무지개 다리(Rainbow Bridge)’로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 무지개 다리는 질긴 금속 와이어와 단단한 발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처음 폭포 사이를 연결한 다리의 시작은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었다. 이 다리는 1847년, 현수교 설계시공 전문가인 ‘찰스 엘렛 주니어(Charles Ellet Jr)’가 연을 띄워 연줄로 다리 양쪽을 연결한 후 연줄에 코일을 매달아 잡아당겼고, 다음에는 아주 가는 코일에 약간 더 강한 철사를, 철사에는 다시 밧줄을 매달아 당겼다. 마지막으로 밧줄에 케이블을 매달아 잡아당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쇠줄을 이용해 다리를 놓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람들이 원하던 대로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무지개 다리가 놓이게 됐다. 이 모든 것은 가느다란 한 가닥 실에서 시작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로 끝낼 수 없다. 인류의 위대한 건축물인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도 처음 쌓은 벽돌 한 개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꾸준히 노력하고 성장시키면 그 어떤 뛰어나고 거대한 것이 될지는 모르는 것이다. 시작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위대해지려면 시작부터 해야 한다.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한류가 21세기에 전 세계에서 열광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한류 스타들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근래에는 문화훈장을 수여한 최초의 아이돌스타인 ‘방탄소년단’의 열기로 세상이 뜨겁다. 그런데 오래전 중국을 석권한 원조 한류스타가 있다. 소년의 이름은 ‘김염’. 본명은 ‘김덕린’이다. 1927년 18세 소년이었던 그는 중국 상해에서 영화사 허드렛일과 엑스트라, 단역을 거치면서 1932년 개봉한 영화 ‘야초한화(野草閑花)’로 스타가 되었다.

‘친구로 사귀고 싶은 남자 배우 1위’ ‘가장 사랑받는 남자 배우 1위’ ‘가장 잘생긴 남자 배우 1위’ 등 그는 온갖 찬사를 받으며 중국 국민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아왔다. 독립투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중국에서 어렵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영화사에 취직한 뒤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는데 일본 제국주의를 홍보하는 영화는 출연을 거부하고 제국주의에 맞서고 저항하는 영화는 적극적으로 출연했다.

그는 자신이 독립운동가 가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안창호 선생’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아버지 ‘김필순’을 비롯하여 고모 ‘김순애’ 역시 부인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고, 고모부는 ‘파리 강화 회의(Peace Conference at Paris)’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한 ‘김규식’이었다. 일제는 얼마나 김염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했을까? 제국주의를 위한 영화에 출연하라는 협박에도 ‘기관총으로 나를 겨눈다고 해도 그런 영화는 찍지 않을 것이다.’ 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김염은 영화를 통한 자신의 성공이나 출세보다는 영화라는 문화 상품을 통해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아시아의 청년들을 대표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중국인이 사랑했던 영화배우.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거부한 의식 있는 공인.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원조 한류스타의 모습이다. 모든 국민은 각자 자기의 천직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조국에 봉사하는 길이다. 이 가을을 보내며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할 존재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초등학교에 말썽꾸러기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와 덩치가 큰 이 학생은 자신의 우월한 힘을 믿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혔다. 다른 아이를 때리고 물건을 뺏는 이 아이를 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많은 선생님이 노력했다. “다른 아이를 때리면 안 돼.” “다른 아이의 물건을 빼앗으면 안 돼.” “다른 아이를 괴롭히면 안 돼.” 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학생의 태도에 선생님들은 이 학생을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자고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학생에게 말했다. “요즘 너희 담임선생님이 몸이 매우 아프단다. 네가 선생님을 대신해서 반 아이들을 돌보아 주면 좋겠구나. 너무 장난을 치는 아이는 그러지 못하도록 말려주고, 몸이 아픈 아이가 있으면 양호실로 데리고 가주렴. 네가 힘이 세고 용감하니까 선생님이 특별히 부탁하는 거란다. 할 수 있겠니?” 이후 말썽꾸러기 학생은 다른 학생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돌보기 시작했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칭찬받는 모범생이 되었다.

‘하지 마! 안 돼!’ 라고 지시하는 교육이 어떤 아이에게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주지 않겠니?’ 라는 부탁으로 아이의 곁으로 내려와 눈높이를 맞춘 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아이도 있다. 100명의 아이에게는 100가지의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색깔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 수많은 색깔을 어떻게 이끌지는 결국 어른들의 몫이다. 교육이란 화를 내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고도 거의 모든 것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다. 비단 이이들의 교육에만 한정된 가르침은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한 사람은 내향적이고 또 한 사람은 외향적인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내향적인 친구는 자라서 판사가 되었고 외향적인 친구는 사업가가 되었다. 서로 일이 바빠져 만나는 횟수는 줄었어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장소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사업가 친구가 사기죄로 피의자가 되어 판사 친구가 판결을 내리는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사업가 친구의 동업자가 부도 어음을 멋대로 남발하고 잠적해 버린 사건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사업가 친구도 큰 피해를 보았지만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판사 친구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지 궁금해했다. 판사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했다. 사업가 친구는 고개를 떨궜다. 남은 재산을 모두 피해자 구제에 사용하여 빈털터리가 된 사업가는 벌금을 낼 돈이 없었고, 긴 시간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자 판사 친구가 법복을 벗고,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친구에게 다가갔다. 하나의 봉투에는 친구가 내야 할 벌금이 있었고, 또 하나의 봉투에는 사직서가 있었다. “공직자의 몸으로 법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하지만 자네를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지.” 문명과 함께 통신기술도 발달하여 사람과의 소통이 매우 쉽지만 오히려 옛날보다 외로움과 단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간다고 한다.

휴대전화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만 진심으로 괴롭고 힘들 때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단 한 명이라도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돈을 아무리 줘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우정이 혹시 우리의 옆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살펴보자. 뒤로 불어오는 바람, 눈앞에 빛나는 태양, 옆에서 함께 가는 친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열 한 번이나 구애를 했지만 거절당한 비둘기 총각이 낙심에 젖어 나뭇가지에 앉아있을 때 참새가 찾아와 물었다. “너 눈송이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비둘기는 귀찮고 괴롭다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그것 알아서 뭘 해... 별 것 아니겠지, 뭐” 그러자 참새는 자신의 경험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어느 날 내가 큰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어. 아주 조용히 내려 사뿐사뿐 쌓이는 둥 마는 둥 쌓이기 시작했어. 나는 심심해서 그것을 세어 보기로 했지.

그런데 정확히 8백74만1천9백52송이가 내려앉을 때까지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다음 한 송이가 내려앉자마자 그만 그 큰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단다.” 참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둘기가 눈이 번쩍 뜨이며 생각했다. “별 것 아닌 눈 한 송이가 더 얹혀지자 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고....? 그렇다면, 그렇지 나도 한 번 더 해 봐야지!” 그래서 비둘기는 열 두 번 째 프로포즈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도 있다. 커다란 바위를 가르는 것도 나무의 작은 뿌리이며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듭하면 어느 한 순간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목표를 위해 집중하고 반복하다 보면 당치 못하다 생각되어지던 목표들에 도달하는 경우를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목표는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치지 않고 반복하면 그것이 좋은 습관을 만들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목표치에 도달하게 된다. 역으로,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습관들이 어느 한 순간 나를 무너뜨리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좋은 습관이란 그래서 바람직한 삶을 영위해 감에 초석이 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 해 가을이 갈 적마다 우리는 ‘올 가을에는 기필코 잊지 못할 사랑을 할 거야.’ 또는 ‘누구에게라도 기억되는 선행을 베풀 거야.’ 등 자신과의 약속을 하지만 이행치 못하고 허망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변함없이 자신과의 약속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행키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환하고 즐겁게 웃을 때 우리 몸 속에서는 ‘엔돌핀’이 나온다고 한다. 엔돌핀 자체가 면역성을 가진 ‘항체 호르몬’이라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미국 의학계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보면 엔돌핀보다 무려 5,000 배나 더 강력한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은 ‘다이도르핀’,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 몸에 생성되는 ‘감동 호르몬’이다.

이와 반대로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은 불쾌하거나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았을 때 생성된다. 몸 속의 산소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악마의 호르몬’이라고 한다.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 악마의 호르몬이 나를 해쳐 자기만 손해를 본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수묵화로 내리는 가을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은밀히 내포하고 있는 진리의 답변 또한 가을비가 우리를 향해 넌지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되며, 또 언제 거꾸로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주의를 받아야 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우리는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주고만 싶은 그런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이 마치 관대함의 표시요, 심지어는 영웅적인 행위의 표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런 태도는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 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고만 싶어.”라는 내용과 다름이 없다.

아무 것도 받음이 없이 그저 주고만 싶다가는 쉽게 소진되어 버리고 만다. 내 자신에게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기쁘게 주는 자가 될 수 있다. 주어야 할 때가 있고 받아야 할 때도 있다.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양자 모두가 동등하게 필요한 법이다. 모든 것에는 적절함과 균형이 필요하다.

더우기 인간 관계에서의 균형은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 필수적인 것 같다. 준다는 것도 받는다는 것도 나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지만, 한 켠으로 치우친다든지 너무 넘치거나 부족하다면 서로에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게 또한 나눔이다. 주는 것도, 또 받는 것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질 때 잘 주고 잘 받은 후의 흡족함을 서로의 사랑으로 승화해 나갈 수 있다 생각한다.

살다보면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문득 떠나고 싶고, 문득 만나고 싶은... 가슴에 피어오르는 사연 하나 숨 죽여 누르며 태연한 척 그렇게 침묵하던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고독이 밀려와 사람의 향기가 몹시 그리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차 한 잔 나누며 외로운 가슴을 채워줄 향기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나뭇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는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살다보면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늘 자기의 짐이 크고 무겁다며, 다른 사람들의 짐은 작고 가벼워 보이는데 내 짐은 왜 이렇게 크고 무거우냐며, 늘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는다. 그러나 보기에 작고 가벼워 보이는 짐을 지고 가는 사람 역시 우리와 같은 생각에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 지고 있는 짐이 크고 무거워 가볍고 작은 다른 짐으로 바꾸어 지고 싶겠지만 그러나 자신이 지고 가는 짐이 자기에게는 가장 작고 가볍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사람은 늘 자기의 짐이 크고 무겁다며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아가는 것 아닐까? 가을이 다 익었다. 이제 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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