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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림삼의 초대시 '내 마음은 냇물 되어'

‘사랑의 달’이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사랑을 되살리고 온 누리에 그 향기를 흩뿌리는 축복의 달이 되어지기를,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시인


  - 詩作NOTE -

  사랑의 달’ 5월이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이 달 시작되기 전 나름 작심했던, ‘사랑의 향기가 되고 배려의 멧신저가 되자던 착한 다짐이 얼마나 잘 실천되고 있는지 짐짓 되돌아본다. 가정이라는 말, 이웃이라는 말, 그리고 부모와, 부부와, 자녀와, 친구와, 동무와, 스승과, 그들과 더불어라는, 가슴 벅찬 용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조용히 반성해본다. 그냥 그저 일시적인 기분으로,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로, 지극히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댓가를 바라는 이해관계의 발상으로, 그렇게 귀한 인연들과 함께 하면서도,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데면데면하게 어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숙고할수록 은근히 뒷꼭지가 켕기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소망한다. 하늘이 맺어준 이 기적처럼 엄청난 인연들이,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만남들이,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 마음 다 기울여 서로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의 나날들로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오늘은 사랑의 달에 어울리는 이런저런 아름다운 관계의 이야기들을 모아, 독자들께 전하는 제언 삼아 시작노트를 꾸며보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이흥렬(李興烈)’이라는,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으니 음악공부를 더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소자는 음악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한편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을 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진 것도 없었는데,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네 근처부터 원거리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 쉼 없이 솔방울을 긁어 모았다. 불쏘시개로 쓰이며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1930년대 쌀 한 가마는 13)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양주동님의 어머니의 마음이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서는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서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 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해,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사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전수 조사해서 위대한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를 읽은 처칠은 신문사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귀 신문사에서는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분은 바로 나의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미국의 전 레이건 대통령도 어머니날 특집프로에 출연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나의 어머니 넬리 레이건여사입니다.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뒤에는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신을 대신하는 이름의 어머니는 끝없는 사랑으로 인간을 만드는 위대한 스승이다.

 

신학기인데도 선생님이 부임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무료한지 여럿이 모여 모래 쌓기를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한 노인이 안타까운지 선생님이 어디에 계신지 아는가? 지금 곧장 집으로 돌아가게나. 그대들을 맞으러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자네들을 가르쳐줄 선생님이야.” 아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는 아들을 껴안고 말했다. “왜 이리 늦었어? 배고프지? 어서 들어가자.”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의 정이 인성교육이었다. 사소한 것부터 조금씩 시작하다보면, 의외로 위대한 결과를 수없이 만들어낸다. 그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 제35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F. 케네디이다.

 

새 생명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는 맘마엄마.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보는 것도 엄마의 눈동자다. 어머니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 언제 생각해도 눈물나는 이름 어머니, 어느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계시다. 젊은이건 나이든 어른이건 어느 누구에게나 부르면 눈물나는 이름 어머니, 눈에 흙이 덮여도 부르고 싶고, 안기고 싶은 사람 어머니, 생존해 계시거나 마음 속에 계시거나 누구에게나 영원한 이름 어머니, 유독 많이 생각나는 사랑의 달이다.

 

비단은 귀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걸레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은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소매 끝만 스친 인연도 그것을 살릴 줄 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배움을 얻느냐에 따라 인생은 전혀 달라진다.

 

19세기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파블로 피카소’. 이 둘 중 누가 더 뛰어난 예술가인지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누가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느냐는 명백하다.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해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좌절을 거듭하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피카소는 살아 생전에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으며 부유와 풍요 속에서 9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

 

도대체 무엇이 두 화가의 인생을 갈라 놓았을까? 수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경영학자들은 인맥의 차이를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인생을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관계라고 한다. 고흐는 사후에 피카소를 능가할만큼 크게 이름을 떨친 화가다. 그가 남겨놓은 걸작들이 피카소의 그림보다 값이 더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죽고난 뒤의 성공이 살아 생전의 성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에는 세 가지의 성질이 있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는 두 가지 일을 못하는 단일성이 있고,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성이 있으며,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면 다음 해에 또 나의 생일이 돌아오는 연일성이 있다. 모든 사물에는 구성 요소가 있고, 시간과 공간은 구성 요소가 없다. 진정한 친구란 괴로울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토로할 수 있고, 갑자기 전화하거나 찾아볼 수도 있으며, 자기가 발견하지 못하는 성격의 단점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하고는 다르다. 진정한 벗인 이 되려면, 첫 째, ‘나이를 따지지 않고()’, 둘 째,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으며()’, 셋 째, ‘집안의 배경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맥의 유형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직업적 인맥구축은 깊이를 중심으로 해야 하고, ‘사적 인맥구축은 다양성을 중심으로 넓게하며, ‘전략적 인맥구축은 적절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심리학 강의시간이었다. 교수는 풍선 속에 각자의 이름을 써넣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우라고 했다. 그리고 풍선들을 한 군데에 모아 천정으로 날려 보냈다. 한참이 지났다. 교수는 자기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찾으라고 했다. 정해진 시간은 딱 5분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풍선을 찾으려고 서로 부딪히고 밀치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5분이 흘렀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잡아 거기 넣어둔 이름을 보고, 그 주인을 찾아주도록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기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찾았다. 교수는 말한다. “지금 시험한 자기 풍선 찾기는 우리네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행복이 어디 있는지 장님처럼 헤매고 있습니다.” 그럼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함께 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이 그들에게 행복을 찾아서 나누어 주자. 그러면 반대로 우리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를 헤밍웨이 법칙이라고 한다. 헤밍웨이는 행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행복을 가꾸는 것은 손 닿는 곳에서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손 닿는 곳에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친구인 것이다. 늘 쉽게 만나고,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관계이다 보니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가볍게 여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소중한 인연의 이름이 바로 친구라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일화를 하나 올려본다. ‘뉴욕에서 플로리다해변으로 가는 버스에 활달한 세 쌍의 젊은 남녀가 탔다. 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세 쌍의 남녀들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다. 그들 앞 자리에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군인?

 

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에게는 깊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침묵.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다. 버스는 휴게소에 섰고, 어젯밤 말을 붙였던 여자가 그 사내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 했다.

 

식사를 끝내고나자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여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얼마 후 사내는 여자의 집요한 관심에 항복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빙고였으며,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 오랜 시간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것이 고생이 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해도 좋다고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그리고 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을 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그래서 손수건을 달아놓지 않았으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버릴 거요.”

 

그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던 것은 거의 4년 동안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 뒤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 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 앞에 나타날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며 마음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자동차의 엔진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들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다. 바로 그때. “~!!”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 안았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다 20... 30... 아니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다. 혹시라도 남편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 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 사람뿐,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늙은 전과자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 이야기는 미국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뉴욕포스트에 게재한 고잉 홈 (Going home)’이란 제목의 글이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1973‘Tony Olando & Dawn’이 만든 노래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억하는 감동 스토리로 남아있게 되었다.

 

노란 손수건은 용서와 포용과 사랑의 표현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용서해주고, 고달픈 세월을 마다 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려준 아내의 지극한 사랑이다.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If you still want me (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한다면)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 (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 한 개를 달아주세요)” 귓전에서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은은하게 들려난다.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미국인 50여 명이 인질로 억류되었는데, 당시 인질로 붙잡힌 한 외교관의 아내가 남편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아 노란 리본을 집 앞 나무에 매달았고,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에, 인질들을 조기 석방하여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리본 캠페인이 확산되기도 했다. 그 뒤에도 노란 리본은 걸프전이라크전등 전쟁터로 떠난 군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는 상징으로 사용됐다. 무조건 정치적인 대립으로 뜻 없이 생각 없이 이슈화 하기 보다, 실제적인 노란 리본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 보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예전에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메시지는 사업이나 회사의 프로젝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하나같이 가족에게 남긴 사랑의 고백이었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부디 애들하고 행복하게 살아.” 많은 사람들이 일에 치여 가족도 잊은 듯 바쁘게 살아가지만, 목숨이 1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을 때는 결국 가족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여보, 나의 아이들아...” 그렇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보람은 일이나 성공이 아니라 가족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무리 소중하고 가치가 있어도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소설가 신달자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9년간의 시부모 병수발과 24년 남편 병수발을 했고, 끝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 밖에 비가 와서 어머, 비가 오네요.” 하고 뒤돌아보니 그 일상적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제야 남편의 존재가 자기에게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함으로 고마운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좋았던 날도 힘들었던 날도 결국 지나간다. 좋았던 날을 붙잡을 수 없듯이 힘들었던 날도 나를 붙잡을 수 없다. 좋았던 날, 힘들었던 날, 모두 어제이다. 오늘이 지나가면 난 내일 안에 서 있을 것이다. 좋았던 날이거나 힘들었던 날이거나 과거에 서 있지 마라.” ‘박광수작가의 에세이,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중 한 페이지의 글이다.

 

행복으로 가득했던 날은 그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정열을 쏟아야 했다. 그리고 불행이 가득한 날은 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싸워야 했다. 행복도 불행도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에도 혹시 찾아올 불행을 피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힘써야 했다. 그렇게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지만, 그 아름다운 행복도 어둡고 암울한 불행도 반드시 과거로 지나쳐 가기 마련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이다. 진정으로 바라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달이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사랑을 되살리고 온 누리에 그 향기를 흩뿌리는 축복의 달이 되어지기를, 그리고 그 주역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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