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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림삼초대시 '사랑에 빠진 나의 봄'

그렇게 실속없이 늙어지다 보니, 덧없는 세월은 엉겁결에 이 나이로 데려오고야 말았다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詩作NOTE -

 

한적한 강원도의 시골에서 첫 숨을 쉬기 시작했는데 어언 고희가 목전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부침으로 순탄치 않았던 이력인지라 그닥 내세울 것 없는 바, 어려서부터 쓰기 시작한 글은 밝은 빛도 못본 채 평생의 족쇄가 되더니, 수시로 직업은 바뀌었어도, 변함없이 끌어안고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게다.

언제나 더 나은, 더 새로운 무언가를 쓰기 위해 부족한 머리 굴리며 진땀 흘리는 짓을 업보라 여기면서, 굴레에서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한 이유 말이다.

그리고 그 인과를 명분 삼은 무책임한 방황은 너무도 이른 나이에 시작되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도무지 한 자리에 머물러서는 마음이 늘상 불안하며 뭔가 모자란 느낌에 시달리게 되었고, 해결책이랍시고 찾아낸 방도가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보는 거였다.

살아온 걸 되돌아보니 정말 무던히도 많이 돌아쳤다.

비무장지대 인접한 산골에서 시작한 방랑은, 뭍으로는 남쪽 땅끝마을 끝자락까지, 바닷길로는 제주섬을 지나 더 아래에서 시작해 동서해안 일대를 훑듯이 누비고 다니며, 그 오랜 세월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매었는지 모른다.

북녘땅이야 중국 쪽에서 휘감아 오른 백두산 말고는 가본 데가 없었지만, 아무튼 예컨대 시작여행(詩作旅行)’이라는 이름 달고 때로는 몇 달 동안을 지인들과 연락 두절인 상태로, 목적지도 일정도 채곡히 세우지 않은 채로, 그냥 어디든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쉬다가 하면서 자아와 싸우던 젊은 날의 흔적이 길게 이어져 흘러버린 세월의 허방 속에서 쓰게 웃고 섰다.

당시는 그게 상식적이며 보편적인 여행의 한 부류인 줄로 여겼다.

그리 믿으면서 천지사방 길만 있으면 내달린 거다.

그저 남보다 팔자가 조금 센 이유이거니, 역마살이 끼었다니 액땜하는 셈 치고, 보헤미안이라 불리면 어떻고 집시라고 손가락질하면 또 대수일까?

좋은 자연, 멋드러진 풍광 대하다가 그럴싸한 글귀 몇 자락 얻어걸리는 요행수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높은 산 꼭대기들을, 이른바 일출과 일몰의 명소들을, 아름다운 꽃무리와 온갖 문화재를 가리지 않고 싸돌아다녔다.

 

그렇지만 그런 치기어린 일탈의 끝에 남는 건 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수려한 경관 앞에 서면 저절로 시심(詩心)이 샘솟는다 하고, 행복하고 흥겨운 환경에 임하면 어느새 시상(詩想)이 떠오른다는데, 우둔한 나는 평생 걸린 표류와 방황의 끝에서도 제대로 된 감정이나 낭만은 커녕, 도무지 꽝꽝 얼어버린 머리가 녹을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안타까울 지경이다.

물론 전혀 글을 쓰지 못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나름 번다한 여행을 다니면서 행기(行記) 시리즈라는 되도 않는 연작시를 여러 편에 걸쳐 쓴 적도 있고, 가는 곳 마다 속속 느끼는 바를 시로 바삐 옮기곤 했다.

그리고 에세이 형식의 여행담을 지면에 게재해서 호평을 받았던 기억도 몇 차례는 떠오른다.

민통선 부근의 고즈넉한 대자연과 보존되어 우거져 있는 숲을 보면서, 치악산 오르면서 만난 자작나무 군락의 한 가운데서, 남한강변의 인적없는 겨울도로 달리다가 안개에 홀리듯 멈추어 서서, 용문사 은행나무의 위용 앞에서 감격의 눈물 뿌리며, 또한 순천만의 갈대숲에서 길 떠나는 철새들을 전송하며, 나는 성의껏 감동을 쥐어짜고 감성을 매조지곤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의 기록들을 단아한 시로, 혹은 청명한 에세이로 짜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떤 글을 써도, 독자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형상으로 빚어지는 실체가 없다는 좌절감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탄을 하고, 때로는 하늘 올려다보며 종주먹 휘둘러보기도 했지만 늘상 결과는 허무 그 하나였다.

그렇게 실속없이 늙어지다 보니, 덧없는 세월은 엉겁결에 이 나이로 데려오고야 말았다.

정작 이제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이런저런 제약이 많이 생겨나는 바람에 쉽사리 탈출을 감행하기가 여의치 않다.

게다가 몸도 예전 같지를 않아 제대로 된 여행의 형식과 준비과정을 갖추거나 듬직한 동행이 있어야 안심하고 길을 나서는, 보잘것없은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제각각 놀다 보니 쌓이는 건 한숨이고 늘어가는 건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어쨌든 누가 보든 말든 글은 계속 써야 하는데 도통 소재 찾기 갈급하고, 적절한 주제 선정하려니 기갈이 든다.

여기저기 약속된 언론 매체에서는 원고 독촉이 이어지고, 기실 게재된 시나 칼럼에도 전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독자들의 댓글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시 한 편 빚어내기가 정말 녹록치 않다.

사정이 그러하니 떠밀려서 쓰는 시라면 거기 무슨 영혼이 담기고, 나아가 독자들의 감동을 부를 수 있으랴, 실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같은 일상으로 전전긍긍하던 지난해 가을 어느날, 남들이 다 걸린다는 코로나 19’를 나라고 비켜갈 재간은 없었다.

도리없이 격리 조치되어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정 기간 강제로 독수공방을 하게 되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데 이골이 난 습성을 억누르고 방구석에 가만히만 있자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컴퓨터도, SNS도 다 흥미를 잃고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기를 수삼일, 꺼진 TV 화면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 그토록 생생하게 어린 시절의 고향 산천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건, 전에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인지라 일순 무척이나 당황하였다.

너무 오래된 기억들이라 어느 부분은 기억의 창고에서 완전 지워졌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잊은 채로 살아왔는데, 또한 잊혀지는 게 당연한 거라고 간주하며 슬슬 포기하고 지내왔는데, 대관절 이게 무슨 기적같은 일인가?

어슴프레한 고향 마을의 골목길, 굽어진 도랑과 징검다리, 뒷마당 대추나무에 걸린 그믐달까지 마치 바로 눈 앞에서 손대면 곧바로 만져질 것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상상의 나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을을 벗어나 신작로를 따라 읍내장터까지, 그러더니 이번에는 세월을 뛰어넘어 학창시절로 성장한 내 모습과 뛰놀던 학교 전경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군 시절의 연병장과 훈련받던 기억, 급기야 첫 직장에서의 떨리던 오리엔테이션으로, 아주 선명한 영상으로 투영되며 순차적으로 치달았다.

한 나절을 쉬지 않고 너끈한 영화의 환상과 더불던 나는 기적인 양 일순 소름끼치는 해탈을 깨닫게 된 거였다.

평생 몸을 움직여 찾아 헤매던 그 어떤 것, 반복되는 여행으로도 결국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 곤고한 나만의 숙제, 살아온 참된 의미와 가치들. 그 여행의 답을 바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찾아준 것이었다.

영혼의 자각은 몸으로 느끼는 감동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억된 감동의 자연적인 표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엄숙한 명제를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매던 삶의 진실이었다.

마음 속의 여행그 여행의 끝에는 진솔한 감동이 있고 무한한 상상이 있었다.

비단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느낌을 살려내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 그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그동안 맹목적으로 몸을 써서 돌아친 내 여행의 경험들도 알고 보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었다.

되레 안으로 차곡히 쌓여 지금부터는 오롯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의 넉넉한 자양분이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리석은 게 아니었구나.

오히려 남들은 갖지 못하는 경험을 탑쌓아 올린, 예컨대 선구자였구나.

일생 동안 방방곡곡에서 모은 자산을 마음으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뛰어난 나그네였구나.

엉겁결에 세상에 둘도 없는 여행 전문가가 된 나는, 내친 김에 이 밤도 기꺼이 또 다른 최고의 여행을 출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제 잠들기 전 난 또 떠날 거다.

봄바람 살 살 불어예는데, 기왕이면 오늘은 달콤한 신혼 시절로 찾아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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