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인 / 새전북신문 논설위원
전남대 후문 한쪽 모퉁이에 자리작은 감성카페 별밭에는 23일과 24일 하루종일 김민기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김민기가 우리곁을 떠나간 날 하늘에서 종일 비가 내렸다.
이날 카페를 찾은 7080 흘러간(?) 청춘들은 주인장이 위로의 마음을 담아 내려주는 핸드드립커피를 마시며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나간 김민기를 추모하고 있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마음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비내리는 북카페의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에 '아름다웠던 사람 영원히 아름다울 사람' 김민기의 영혼이 투영됐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청춘을 희생했던 세대들에게 "의미"를 가르쳤던 '아침이슬'은 시대의 고뇌와 저항을 담고 있었다.
신이 인간에게 준 두가지 선물이 망각과 눈물이라지만 이날 만큼은 눈물도 싫었다.
그는 가난했지만 당당했고
그는 왜소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는 잔혹한 폭압의 시대에 민주주의 깃발이 되어준 암흑속의 '불빛'이었다.
자신의 히트곡 ‘상록수’처럼 30여 년간 작은 극장 학전을 지킨 가수 겸 소극장 학전 대표 김민기 씨가 위암 투병 끝에 21일 '아침이슬' 처럼 눈을 감았다. 향년 73세.
김민기는 지난 1951년 익산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무위당 장일순의 내제자인 김민기는 '앞것'을 꽃피우기 위해 기꺼히 '뒷것'이 됐다.
그는 스승과 함께 원주 가톨릭센터 건립에도 힘을 보태며 센터 첫 공연작인 ‘금관의 예수’ 도 작곡했다.
생전에 박맹수 전원광대 총장과도 두터운 우정을 나눈 김민기는 무위당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섬겼다.
김민기는 스승과 함께 1980년대부터는 ‘한살림’ 운동을 통해 생명사상을 전개했다.‘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 불릴 만큼 동학사상에 심취했던 스승을 따라 평화와 생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선악의 이분적 사유를 넘어 참 진리의 세계를 유영했던 김민기는 경계가 없었다.
‘조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고 말할 만큼 모든 생명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했던 스승의 흔적을 제자 김민기의 인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하늘의 별이 된 김민기는 '아름다운 사람' 이었다.
그가 영원한 스승 '무위당' 장일순 곁에 영원히 잠든것은 그나마 남은자들에게 주는 작은 위로이자 '쓰다듬'이다.
'옳바르게 사는 것'김민기를 사랑했던 '남은자'의 몫이다./
정종인(새전북신문 논설위원)